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성룡 (문단 편집) === 건축계 활동 === 당시 건축계는 학연으로 뭉쳐 있어 담론이 형성되지 않고 건전한 비판을 통한 자정기능을 상실해 있었다는 비판에, 30~40대 건축가들 곽재환, 김병윤, 도창환, 동정근, 백문기, 방철린, 승효상, 우경국, 이성관, 이일훈, 이종상, [[승효상]], 민현식, 김인철 등이 1990년 4월 3일에 모여 학연을 떠난 건전한 담론의 장인 '4·3 건축그룹'을 결성했으나, 2년 후에 해체되었다.[* [[승효상]]의 인연으로 '4·3 건축그룹'에 강연을 오기도한 [[김진애]]와 당시 인연을 맺은 듯하다.] [[1993년]]에는 '4·3 건축그룹'에서 인연을 맺은 김인철, 민현식, [[승효상]]과 김석철, 조건영, 정기용, 김영섭 등을 더해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건미준)'을 결성하였다. [[1995년]]부터 10여년간 이어진 민간 교육단체인 서울건축학교의 교장이였다. 당시의 막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건축가들과 국내건축가들이 튜터와 크리틱으로 참여하였다. '4·3 건축그룹'과 '건미준' 등 에서 같이 활동 했던 [[승효상]], 민현식, 김인철, 정기용, 김영섭 등과 김원, 이종호, 미국에서 활동하던 서혜림 등이 대표적인 참여 건축가. 서울건축학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SANAA|세지마 카즈요]]와 [[렘 콜하스]] 등이 당시 조성룡도시건축이있던 '양재 287.3' 지하에서 초청강연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