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성민(농구) (문단 편집) === 아마추어 시절 === [[전주고등학교]] 출신으로 동기인 [[김학섭]]과 함께 [[한양대학교]]에 들어갔다. 한양대 농구부는 조성민이 들어갔을 당시에 구타가 횡행했고 아예 감독이 대놓고 구타하던 시절이니 말 다했다(…).[* 참고로 야구부 구타는 [[정민태]]가 없앴고, 농구부 구타는 감독인 김춘수(2014년 별세)가 구타하다가 비디오 카메라에 찍혀서 짤리면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김학섭이 이를 못 버티고 자주 소풍[* 농구계 은어로 팀을 이탈하는 것을 뜻한다.]을 나간 것과 달리 조성민은 끝까지 버티면서 고교 시절 자기보다 평가가 더 높았던 김학섭을 제치고 대학 무대에서 주목받는 선수로 성장한다.[* 다만 김학섭이 참지 못했던건 단순한 구타나 가혹행위가 아니라 김춘수와의 관계가 최악이었던 게 문제였다는 이야기들이 제법 있다. 모종의 이유로 김춘수가 김학섭을 애시당초부터 무척 미워했다는 건데, 반대로 조성민은 김춘수가 꽤 아끼던 애제자기는 했다. 단순히 시련을 참아내며 묵묵히 노력해온 성실한 범재와 게으르고 불성실한 천재의 스토리로 봐서는 안된다는 것. 김춘수가 김학섭을 미워한 저 모종의 이유에 대해서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인 듯은 하다. ] 비록 드래프트에서는 김학섭이 재능을 인정받아 4순위로 모비스에 들어가고, 자신은 8순위로 KTF(現 kt)에 들어가지만, 오늘날의 위상을 생각하면...[* 김학섭은 이후 [[서울 SK 나이츠|SK]]-[[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오리온스]]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2011-12 시즌 오리온스를 마지막으로 짧은 프로생활을 마감한다. 은퇴 후 곧바로 모교인 전주남중에서 코치를 시작하여 현재는 전국 최정상급으로 팀을 올려놓으며 지도자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초-중-고 동기인 조성민은 쓰던 농구용품을 보내주고 비시즌 가끔 모교를 찾아오는데 어린 학생 선수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여담으로 연고대를 갈 수 있었던 김학섭이 조성민을 데리고 가느라 한양대로 진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성민이 국대 슈터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데는 김학섭의 희생도 한 몫 한 셈. [[http://www.rookie.co.kr/bbs/board.php?bo_table=kbaetc&wr_id=44|관련기사]](Rookie 매거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