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성민(농구) (문단 편집) === [[부산 kt 소닉붐|부산 KTF 매직윙스/부산 kt 소닉붐]] 시절 === [[파일:KTF 조성민 입단.jpg]] 신인 시절 전지훈련에서 활약하며 [[추일승]] 감독의 눈에 들었는데, 그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으면서 신인 시절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하며 그리 좋은 성적은 내지 못했다.[* 사고를 당한 부모님은 죽기 직전 막내 조성민의 전지훈련에 지장이 갈까봐 자신들의 죽음을 바로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귀국 후 선물을 사들고 집에 돌아온 조성민은 작은아버지로부터 부고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결국 신인 시즌을 마치자마자 바로 군에 입대했는데, [[김동욱(농구선수)|상무에서 뛰면서 실력을 향상시켜]] 제대하자마자 kt의 주전 가드로 도약하기에 이른다. 사실 이때까지는 kt는 KBL에서 [[비인기]]이자 비주류[* 공교롭게도 자신을 드래프트로 선택한 추일승 감독님과 명장인 전창진 감독은 모두 매니저 출신으로 비주류라는 공통점이 있다.]인데다가 스텟이 특출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성민은 그냥 나쁘지 않은 선수로 인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게 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은메달을 수상한 일이다. 애초에 처음 명단에 뽑히지도 못했다가 추가로 선발되었다가 경쟁 후 최종선발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는 [[문경은]] 이후 국가대표 슈터부재가 꾸준히 지적되는 상황. 그리고 조성민에게 그것을 바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실제 아시안 게임에서도 슈터로 선발된 다른 인원([[이규섭]], [[김성철(농구)|김성철]])들이 몰텐공에 적응을 못하며 전원 부진에 빠졌었다. 하지만 반대로 조성민은 50%이상의 3점 성공률을 보여주며 가드진에서 양동근과 함께 유이하게 제 몫을 해주었다. 조성민의 임팩트는 매우 컸고 조성민의 위상이 상승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로는 국가대표에 주전은 아닐지언정 항상 선발되게 되었다. [[파일:KT 10-11 조성민 선수.jpg]] 아시안 게임을 바탕으로 상승세를 탄 조성민은 kt [[전창진]] 감독의 모션오펜스의 주축이 되면서 주전 슈팅 가드로 맹활약했다. 특히 kt가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2010-11 시즌에는 평균 13.8득점을 기록하며 팀 공격의 주축이 되기도. 비록 MVP는 팀 동료 [[박상오]]에게 돌아갔지만, 실질적인 MVP는 조성민이라는 의견이 많았을 정도.(이도 사실 2위를 차지한 전자랜드의 문태종이 MVP여야 한다는 여론이 가장 많았었다.) 역시 국가대표에도 선발되었다. 하지만 이때는 체격조건과 운동능력이 뛰어나며 수비력이 좋은 [[강병현(1985)|강병현]]이 주전으로 뛰며 중용받지 못했으나 [[2012 런던 올림픽]] 최종 예선 티켓이 걸린 [[필리핀]]과의 3,4위전에서 미친 득점력을 보여주며 역전승의 주역이 되어 최종 예선 티켓을 가져오는데 이바지했다. 2011-12 시즌에도 평균 13.62점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이어갔다. 2012-13 시즌에도 꾸준한 국가대표급 슈팅가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보수총액 4억7천만원에 5년 계약을 맺었다. 2013-14 시즌 개막 전까지 kt의 로스터가 상당히 약하다는 평이 주류를 이루었고 조성민 하나만 막으면 끝이라는 평가와 함께 대부분의 매체에서 6강 탈락을 예측했다. 주전 포인트 가드인 [[김현중(농구)|김현중]]이 부진했던데다가 이후에 주전이 된 김우람이 득점력은 좋으나 리딩이 약한 가드였기 때문에 조성민이 리딩에 치중할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전시간(32분), 득점(15점)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kt를 이끌었다. 한 때 정규시즌 MVP로도 거론되었지만,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멀어졌다는 느낌이 강해졌다. 팀은 6강 PO 진출을 했고 4강까지 진출했지만 LG에게 스윕을 당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MVP는 [[문태종]]에게 돌아갔지만 MVP투표 2위였고 이성구 페어플레이상을 받으면서 자존심을 챙겼다. 2013-14 시즌 2013년 12월 1일 사직실내체육관에서 열린 SK와의 홈경기에서 3점슛 10개를 넣었다. 발만 맞으면 여지 없이 들어간다. ~~조성민의 오프더볼무브에 탈탈 털린 SK~~ ~~SK의 수비는 그때나 지금이나...~~ [youtube(Oz8EK9Xnpi8)] 자유투 성공률이 매우 높은 선수로 늘 리그에서 자유투 성공률 최상위권에 랭크되고 있다. 2014년 1월 29일에는 KBL 자유투 연속성공 신기록 56개를 달성했다. 기존 기록은 문경은이 현역 시절에 기록한 52개. 2014 농구 월드컵 한국 대표로 뽑혀서 슈팅가드로 뛰었다. 하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고 조성민 역시 부진했다. 그 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로도 뛰었고 꾸준히 제몫을 해주면서 한국 남자농구 금메달 획득에 일조 하였다. 조성민은 국가대표일원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뛰었고 평균 득점도 문태종에 이어 2위였다. 조성민은 아시안 게임에서는 확실히 제몫을 했다. 아시안 게임에 2회 출전하여 금메달 1회, 은메달 1회를 수상하며 대한민국 국가대표 농구선수로서 최고는 아닐지언정 충분히 인정 받을만한 커리어를 쌓았다. 그런데 국가대표를 뛰면서 무릎이 망가졌고 시즌이 시작되기 전 무릎 수술을 해야 된다는 진단을 받아 8-10주정도 재활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와 kt팬들과 [[전창진]] 감독에게 충격을 주었다. kt의 중심은 조성민인데 8-10주동안 재활이 필요하면 사실상 시즌 중후반이나 제대로 뛸 수 있다는 것이다. 2014-15 시즌 kt는 조성민 없이 시즌을 시작하였고 8연패를 기록하며 바닥을 쳤다. 그래도 조성민은 생각보다 빠른 회복력을 보이며 수술후 재활과정을 포함해 거의 2달만인 12월 3일 삼성전에서 복귀를 하였다. 부상 후유증이 염려되었지만, 17분 동안 19득점을 폭발시키며 왜 자신이 현 KBL 최고의 슈팅가드인지를 증명함과 동시에 몸상태에 대한 우려를 날려버렸다. 체력적인 부분의 준비가 더 필요하지만 클래스는 여전하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 그 뒤로 기복이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래도 실력있는 슛터라는걸 입증하였다. 하지만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이 부치는지 잘할때는 잘하지만 기복이 심해졌고 플랍횟수가 늘어나며 이미지까지 안좋아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kt는 6강 PO진출에 실패하며 조성민이 몸을 더 만들고 천천히 복귀했어야 했다는 팬들의 이야기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되고 있다. 12월 24일 동부와의 경기에서 [[윤호영(1984)|윤호영]]과 신경전을 벌였는데 그와중에 윤호영이 조성민에게 머리로 들이 받는 하극상을 벌였고 조성민은 경기가 끝나고 동부 벤치를 찾아가 사과했으나 윤호영은 조성민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파일:/image/065/2016/11/12/news_20161112223417_DP_99_20161112223605.jpg]] 2015-2016 시즌 조동현 감독의 부임과 함께 2016-2017 시즌에는 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어깨부상을 당하면서 팀에 공헌하지 못했으며 KT는 최하위까지 추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