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성옥 (문단 편집) == 부산고 선수 해외 진출 브로커 == 부산고 감독 시절 제자인 [[백차승]], [[추신수]], [[안태경]], [[정수민(야구선수)|정수민]] 등의 해외 진출을 주도한 이가 조성옥이다. 기사에 따르면 조성옥이 롯데에 악감정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유망주들이 롯데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고 한다. [[http://legacy.h21.hani.co.kr/h21/data/L000626/1pbt6q02.html|#]] 조성옥은 공식적인 에이전트는 아니었다. 언어와 법률 지식 등의 장벽 때문에 실제 정식 에이전트는 따로 있었다. 그러나 선수와 부모를 직접 설득해가며 미국에 진출을 추진한 이는 조성옥이었으며, 계약 과정에서 선수들의 의사 결정에 깊이 관여했고 계약 성사를 위해 실제로 미국을 오가기도 했다. 백차승과 추신수의 공식 계약 체결 현장에도 선수 가족들과 함께 참석했다. 추신수의 해외 진출 당시 조성옥이 추신수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파악한 [[볼티모어 오리올스]] 프런트가 추신수의 영입을 위해 조성옥의 장남 [[조찬희]]를 [[칼 립켄 주니어]]가 설립한 야구학교에 유학 보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을 정도였다.[[http://news.joins.com/article/693871|#]] 98년 봄 [[롯데 자이언츠]] 코치에서 경질되고 부산고 감독이 되었는데, 아직 아마추어 지도자 라이선스가 없어 덕아웃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관중석에서 선수들을 지휘해야 하는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산고 감독이 되자마자 당시 롯데 1지명이 확실시되던 [[백차승]]의 미국 진출에 발벗고 나섰다. 학기 중에도 학교를 비우고 미국을 오가는 수고를 마다한 끝에 백차승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4314959|#]] [[백차승]]을 시애틀로 보낸 후 [[추신수]]의 시애틀 입단을 추진한 이 역시 조성옥이었다. 조성옥은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인연을 이어가 추신수를 시애틀 측에 적극적으로 엮어주었다. 롯데가 추신수를 1차 지명했으나 롯데와의 계약을 파토내고 결국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을 성사시켰다. 계약 성사 직후 조성옥은 백차승 때와 마찬가지로 학기 중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비우고 2000년 9월 추신수 가족들과 함께 미국 시애틀 구단을 방문했다. [[http://m.koreatimes.com/article/20000922/10659|#]] 조성옥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시애틀에 입단하게 된 추신수는 조성옥을 평생 은인으로 여기게 되었다. [[파일:external/pds.joins.com/201111111850203100_1.jpg]] 여담으로 추신수는 위의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조성옥을 아버지 같은 분이라 추켜세웠다. [[안태경]]과 [[정수민(야구선수)|정수민]]을 미국으로 진출시킨 이도 조성옥이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11&aid=0000018392|#]] 조성옥은 안태경과 정수민이 1학년이던 시절만 지도하고 동의대 감독으로 떠났지만 동의대 감독으로 있으면서도 이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말았다. 알려진 사례만 해도 이 정도니 실제로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가 성사되지 않은 사례는 수없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무리해 보일 정도로 여러 선수들을 해외로 진출시켰으나, 추신수 단 한명을 제외한다면 모두 해외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추신수도 고교 시절 투수였던 그를 시애틀이 타자로 전향시켰기에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고교 시절 그렇게 엄청났던 [[백차승]]도 실패하고 말았다. 게다가 백차승은 연이은 부적절한 처신 끝에 [[병역법]] 위반으로 평생 범법자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대한야구협회]]도 많이 욕을 먹었고, 일차적으로는 백차승 본인과 가족들의 책임이 크지만, 한편으로는 조성옥이 부산고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너무 갑작스럽고 무리하게 백차승의 미국 진출을 추진하면서 시애틀과의 계약 과정과 청소년 국가대표팀 일정이 겹쳐 꼬여버리는 등 조성옥의 무리한 계약 추진과 부적절한 대처가 백차승의 인생을 꼬이게 만드는데 한몫한 것도 사실이다. 이후 그동안 봐왔던 수많은 유망주들이 미국에서 줄줄이 실패한 것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진출하기에는 포텐이 의심스러웠던 [[정수민(야구선수)|정수민]]과 [[안태경]]을 미국으로 진출시킨 것은 노욕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실제로 안태경과 정수민은 거의 [[루키리그]]와 싱글A를 전전하며 고생만 하다가 귀국했다. 그나마 꾸준히 1군에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정수민과는 달리 안태경은 [[사이버 투수]]로 전락한 끝에 2017시즌을 끝으로 방출당했다. 고교 유망주들의 해외진출 붐이 일어난 후 숱한 실패 사례를 통해 현 시점에선 정말 특출난 선수가 아니라면 미국보다는 한국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 정설이 되다시피했다. 바로 [[메이저리그 베이스볼]]로 직행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대부분 미국 [[마이너리그]]를 거쳐야 하는데 이게 갓 성인이 된 선수들에게는 상당히 가혹하다. 열몇시간을 좁은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 마이너리그의 살인적인 이동거리와 일정이 경기 외적으로 선수들을 지치게 한다. 긴 이동시간 좁은 버스에서 잠을 청하기 위해 버스 바닥에 누워자는 선수도 적지 않다고 한다. 새벽 두시에 원정 숙소에 도착한 후 새벽 네시에 기상하여 다음날 낮경기를 대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코칭 스태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국내 리그의 차이는 더욱 크다. 한국에서는 2~3군을 포함하더라도 팀당 등록 선수가 제한되어 있고, 코칭 스태프들이 알아서 선수들을 지도해 주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산하 마이너리그 코치인 [[홍성흔]]의 인터뷰에서도 나타나듯이 미국에서는 선수가 먼저 다가오기 전에는 절대 코치가 먼저 선수에게 이렇게 고쳐라고 얘기해서는 안된다. [[http://sports.news.naver.com/wbaseball/news/read.nhn?oid=108&aid=0002659986|#]] 시카고 컵스에서 10년간 스카우터로 있었던 [[성민규]]는 이광용의 옐로카드에 출연했을 때 왜 본인이 스카우트한 선수들이 미국에서 다 실패했냐는 질문을 받자 "말을 호수까지 데려갈 수는 있다. 근데 한국에서는 호수까지 데려와 물까지 떠먹여준다. 하지만 미국은 물을 마시던 말던 상관을 안한다. 니가 알아서 마셔라 하고 그냥 놔둔다."라고 말하며 한국과 미국의 성공률이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산하에 수많은 레벨별 마이너리그팀을 거느리고 있어 선수 자원이 넘쳐나고 있는 메이저리그팀들은 그 많은 유망주들을 일일이 지도하는 방식을 취하는 대신 각자 자기 능력껏 경쟁하면서 될 놈이 살아남을 때까지 기다리는 방목형에 가까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마이너리그 코치들은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존재라기 보다는 이들을 지켜보면서 평가보고서를 작성하여 옥석을 가려내는 역할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미국팀들은 젊은 선수들을 자극하고 성공에 대한 욕구와 경쟁심을 부추기기 위해 일부러 마이너리그 환경을 열악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육성을 전제로 하는 한국의 2군, 3군 시스템과는 근본적으로 지향점이 다른 것이다. 엄격한 사제관계 하에서 코치로부터 일방적인 지도를 받는 습관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 선수들이 미국 코치에게 먼저 다가가 지도를 요청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언어 문제가 있기 때문에 코치에게 영어로 말을 거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려운 일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 코치들은 선수들이 먼저 말을 걸어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는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미국에 건너가서 나름 열심히 수개월간 회화 공부를 하고 미리 준비해서 어렵게 질문 한두가지는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돌아오는 대답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어학연수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수개월 공부해서 어찌어찌 질문은 할 수 있겠는데, 돌아오는 말이 도통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서 좌절한 경험이 많을 것이다. 조성옥에 의해 미국으로 진출한 [[정수민]]은 미국 마이너리그 시절 부상을 당했는데 자신을 도와줄 코치가 아무도 없어 혼자서 1년간 재활을 해야 했다는 사연을 털어 놓기도 했다. [[http://www.maniareport.com/view.php?ud=133682|#]] KBO리그에 있었다면 당연히 재활/트레이닝 코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테지만 미국에서는 전혀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또 재활하면서 투구품이 무너졌지만 코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구단은 무너진 투구폼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대신 주저하지 않고 그를 방출해 버렸다. 팀에서 방출당한 정수민은 국내로 돌아와 현역병으로 군입대하여 [[제22보병사단|22사단]]에서 복무하게 된다. [[안태경]] 역시 [[정수민]]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텍사스에서 부상으로 고전했으나 제대로된 관리를 받지 못했고 결국 중도 포기하고 귀국하고 말았다. 귀국 후 현역으로 군복무를 했고 제대 후 늦은 나이에 드래프트에 나와 롯데에 지명되었다. 그러나 사병으로 근무하면서 폼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기 때문에 결국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러다 보니 그처럼 열악한 미국 마이너리그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조성옥이 자신의 제자들을 계속 미국에 보냈던 것은 과연 진정 제자들을 위한 것었는지조차 의심받는 상황이다. 거액의 브로커 수수료 때문이었는지, 롯데에 대한 맹목적인 적개심 때문이었는지는 본인 이외에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들이 만약 한국 KBO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경우에 따라 FA를 통해 어느 정도 거액을 손에 쥐게 되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결국 이들의 해외 진출은 팬들은 물론 선수 본인 입장에서도 무척 안타까운 선택이 되어버렸다. 사실 조성옥 뿐만 아니라 몇몇 고교 지도자들이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브로커 노릇을 했던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표적으로 2000년 9월 충암고 감독직에서 해임당했던 곽성열 감독. 그 역시 브로커 노릇을 했던 것이 결정적인 해임 사유였다. 다만 후임 감독으로 부임한 정병규가 [[충암학원]]에 뒷돈을 주고 감독에 선임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에 다수의 학부모와 선수들이 이에 반발해 학교측과 갈등을 벌였다. 충암고에서 퇴출된 곽성열은 때마침 새로 야구부를 창단한 한광고 감독으로 영입되었고 충암고와 갈등을 벌이던 학부모와 선수들을 한광고로 집단 전학시켰다.[* 다만 당시 팀의 에이스 투수 [[조태수]]는 [[배명고등학교 야구부|배명고]]로 갔고, 다른 일부 선수들은 [[배재고등학교 야구부|배재고]]로 전학갔다.] 이에 충암고 야구부는 한동안 암흑기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한광고 야구부는 창단 1년 여만에 해체되고 말았고 그를 따라 전학갔던 충암고 출신 한광고 선수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곽성열 또한 다시는 야구판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0032497|충암고 야구부원 15명, 신생팀으로 집단 전학]]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