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예 (문단 편집) ==== 초기 ==== [[조비]]가 죽은 지 불과 3달 후, [[손권]]은 조예를 우습게 보고 군대를 이끌고 강하군을 공격했다. 신하들은 모두 놀라며 군대를 보내자고 건의하였지만 조예는 “[[손권]]은 수전에 익숙한데, 감히 배에서 내려 뭍에서 공격하는 까닭은 (우리가) 대비하지 못한 것을 엄습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오. 지금은 문빙과 서로 대치하고 있으며, 공격이란 수비하는 세력보다 두 배는 있어야 하므로, 끝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오.” 라고 말했다. 이보다 앞서 치서시어사 순우를 보내 변방(병사들)을 위로하고 있었는데, 순우가 도착하여 강하군에서 지나가는 현마다 징발한 군사 및 따르는 보병과 기병 1,000명을 이끌고 산에 올라 횃불을 들자(병사가 많은 것처럼 위장하는 것) [[손권]]은 물러나 달아났다. 228년 봄 정월, [[촉나라]]를 배신하고 [[위나라]]로 귀순한 [[맹달]]은 자신을 총애하던 [[조비]]가 죽자 다시 [[제갈량]]과 내통하여 [[위나라]]를 배신하려고 했다. 이에 [[사마의]]가 신성으로 출진하여 8일 만에 도착하고 포위한 지 16일 만에 속도전으로 결착을 보았다. 위략에 따르면 [[사마의]]가 맹달의 대장 이보와 맹달의 조카 등현을 유인하자, 등현 등은 성문을 열고 군대를 맞아들였다. 맹달을 참수하여 수급을 보내오니 낙양의 번화한 길에서 머리를 불태워버렸다.[* 이는 맹달이 내부에서 [[제갈량]]에게 호응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제갈량의 1차 북벌을 막아내는 데 간접적으로 기여하였다.] 이후 조예는 먼저 [[조비]]가 조예의 옆에서 정사를 보좌하도록 한 4명의 대신 중 [[진군]]을 제외하고 [[조휴]]는 회남으로, [[조진]]을 관중으로, [[사마의]]를 완성으로 각각 보내 한 지방의 임무를 맡기고 정치는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강력한 황권을 바탕으로 [[조비]] 시대 [[구품관인법]]으로 문벌중시 경향이 생기면서 성행하기 시작한 우아한 말투와 고상한 자태를 뽐내는 실속 없는 무리들을 모두 면직시키고[* 여기서 걸린 게 [[필궤]], [[하안]], [[이승(조위)|이승]], [[정밀#s-2|정밀]], [[환범]] 등등의 인사들. 이들은 조예가 죽은 후에야 조상의 도움으로 출세하는데, 결국 [[고평릉 사변]]으로 정권을 잡은 [[사마의]]의 손에 제거된다.] 다시는 등용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으며 청담론을 멀리 하고 경전을 학습하게 하였다. 또 가혹한 형벌을 느슨하게 하여 사형에 관한 법령 조문을 검토하고 많은 부분을 삭제하였으며, "항상 재판이란 천하의 생명에 관한 일이오" 라고 말하며 큰 재판이 있을 때마다 방청할 만큼 법리에 관심이 많았다. 229년에는 사공 진군과 산기상시 유소 등에게 한대의 법률을 정비하여 신법률을 제정하게 하였다. 적전 의식을 행하여 농업을 권장하고 적전에서 스스로 밭을 갈았으며 관의 창고를 열어 자립할 수 없는 자들을 구제하였고 233년에는 자립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해 세금을 면제해 주었다. 여러 번 순시를 하며 과부, 고아, 아들 없는 노인을 위문하고 곡물과 흰비단을 하사했으며 조비 시대의 부세와 부역을 줄였다. 그러나 이미 이때부터 조예에게는 사치와 향락, 도교적인 연단법에 탐닉하는 모습 등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신 [[위기(조위)|위기]]는 이런 조예의 모습을 보고 다음과 같이 간언하였다. >(전략)[[구천]](句踐)은 인구를 늘릴 방법을 깊이 생각하였어도 미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였는데, 지금 상방(尚方)의 금은 제품은 점점 더욱 증가하고, 공사와 부역은 끊이지 않으며, 사치스러운 기풍은 나날이 성행하고, 국고는 나날이 텅 비어 가고 있습니다. 옛날 [[한무제]](漢武)는 신선의 도를 믿고 구하여 구름 끝 이슬과 옥가루를 함께 먹으면 장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선장(仙掌, 높이 세운 손 모양의 그릇)을 세워 구름 이슬을 얻으려 했습니다. 폐하께서는 박식하고 현명하셔서 항상 그를 조소했습니다. 한 무제는 이슬을 구하려다 오히려 비난을 당했고, 폐하께서는 이슬을 구하지 않으면서 헛되이 선장을 세웠습니다. 이러한 기호에는 이익이 될 것이 없는데 인력과 비용을 낭비하고 있으니, 진실로 성스러운 생각으로 마땅히 명확하게 제정해야만 합니다.[* (전략)深思句踐滋民之術, 由恐不及, 而尚方所造金銀之物, 漸更增廣, 工役不輟, 侈靡日崇, 帑藏日竭。昔漢武信求神仙之道, 謂當得雲表之露以餐玉屑, 故立仙掌以承高露。陛下通明, 每所非笑。漢武有求於露, 而由尚見非, 陛下無求於露而空設之;不益於好而糜費功夫, 誠皆聖慮所宜裁制也。] >------ >오서 열전 권21 왕위이부류전 위기[* 위기는 229년에 죽었으므로 그 이전에 간언했을 것이다.] 조예의 이런 기질은 [[제갈량의 북벌]] 당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