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정미(송) (문단 편집) == 생애 == 송나라의 [[태조(송)|태조]](太祖) 조광윤과 [[태종(송)|태종]](太宗) 조광의의 동생이다.[* 본래 조정미 위로 큰형인 조광제(趙光濟)와 동생인 조광찬(趙光贊)이 있었으나 조광제와 조광찬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본래의 이름은 조광미(趙匡美)였으나 조광윤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태조의 이름을 피휘하여 조광미(趙光美)로 고쳤다.[* 한국어로는 바룰 광(匡)과 빛 광(光)의 발음이 같아서 피휘를 하나마나한 것 같지만 중국어로는 각기 kuang과 guang으로 발음된다.] 조광미는 태조가 즉위하면서 가주(嘉州) 방어사로 제수되었고 흥원윤, 산남서도 절도사를 지냈다. 그 외에도 태조 재위기에는 동중서문하평장사, 시중, 경조윤, 영흥군(永興軍) 절도사를 역임하였다. 태조 사후 조광의가 즉위하면서 태종의 이름을 피휘하여 정미(廷美)로 개명하였고 상서령, 개봉윤이 더해졌으며 제왕(齊王)으로 봉해졌다가 진왕(秦王)으로 봉해진다.[* 다만, 태종의 즉위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남아있다. 그 과정은 [[태종(송)|태종]] 항목을 참고.] 그런데 태종 재위기에 진왕 조정미가 역모를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이 조정 내에 돌았다. 물론 조정미가 진짜로 역모를 일으키려는 마음은 없었지만 조정미는 태종에 의해 억울하게 개봉윤에서 파직되고 서경유수로 쫓겨났으며 진왕에서 부릉현공으로 강등되었다. 태종의 아들이었던 초왕(楚王) [[조원좌]](趙元佐)는 숙부인 조정미의 신원을 태종에게 간청하였으나, 태종은 조원좌의 간청을 듣지 않았다. 조정미는 이후 방주의 부릉으로 유배되었고 결국 쓸쓸함 속에 옹희(雍熙) 원년(984년)에 세상을 떠나고 부릉왕으로 추봉되었다. 숙부인 조정미의 억울함을 토로했던 황태자 조원좌는 조정미가 죽었다는 소식에 너무 슬퍼한 나머지 궁궐에 불을 놓는 등 완전히 미쳐버려 결국 태종에 의해 폐서인되었다.[* 조원좌는 그의 처지를 동정했던 [[진종(송)|진종]]이 즉위한 뒤 복권되었다.] 사후 조정미는 [[진종(송)|진종]]에 의해 진왕으로 다시 복권되었고 [[휘종(송)|휘종]] 대에 들어서 위왕(魏王)으로 추봉되었다. 시호는 도(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