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조/생애 (문단 편집) === [[관도대전]] 上 === >8월, 원소가 진영을 연결하여 차츰 전진하여 사산(沙山)에 의지하여 둔영을 삼으니, 동서로 수십리였다. 조조 또한 진영을 나눠 서로 당해내게 하였는데, 합전(合戰)하니 불리하였다. > ---- > 무제기 "합전하였는데 불리했다"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대전의 초반부 어느 정도의 승리를 거둔 조조가 원소와의 정면 승부([[회전]])에서 패배하였음을 암묵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록의 여백이 생긴 이유는 [[진수(역사가)|진수]]가 양측이 둔영을 설치한 뒤 벌인 교전에서 조조가 패배한 상황을 누락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진수가 조조가 패배한 전투를 누락하고 철수한 사실만을 기록하는 것은 무제기에서 일관적으로 보인 모습이다. 가령 진수는 여양 전투, 적벽 대전의 전투를 생략하고 조조가 철수한 사실만을 기록한 바 있다. 거기다가 "불리하였다"는 [[적벽대전]]에서도 마찬가지의 용도로 쓰인 바가 있다.] 이어지는 서술은 "조조군의 극심한 부상병 비율"과 '''관도에서의 농성전'''이다.[* 다만 합전을 했다는 것이 단판 회전을 벌인 것인지 지속적으로 자잘한 교전을 벌인 끝에 전선이 밀린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 과정이 단기 결전이든 게릴라전이든 서전을 잘 풀어나가던 조조가 원소 본대의 진군 이후 전선을 유지하지 못한 채 '''극심한 부상병과 함께''' 관도까지 밀린 것은 확실하다.] '동서로 수십 리에 이르는' 원소군의 진영에 대항하여 마찬가지로 진을 펼칠 수 있었던 조조[* 그러나 이것이 원소와 조조의 병력이 대등하다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밀도에 관계없이 병력을 진영을 세우면 되는 거니까... 물론 조조만한 전술가가 그런 뻘짓을 할 가능성은 낮지만. 게다가 이 당시 조조는 사방이 친원소 세력으로 포위되어 있는 상황이라 자신의 전력을 대 원소 전선에 모두 투입할 수 없다는 페널티도 안고 있었다.]는 이 '불리하여 관도로 퇴각'한 사건 이후로 극도로 피폐해졌다. 이 당시의 상황은 무제기의 다음 묘사를 통해 잘 드러난다. "이때 공의 병력이 만 명도 되지 않았지만, 부상당한 자는 열에 두셋이었다."[* 다만 [[배송지]]는 자신의 주에서 이 만 명의 숫자의 신빙성을 의심하였다. 동서 수십리의 군영도 주요한 이유로 뽑았지만 조조군이 농성하면서 군량을 습격하는 별동대를 돌리고 또한 8만 명을 생포하여 매장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지적은 타당하지만 일단 병력이 축소 기록되었다 하더라도 열의 두셋의 부상병이라는 비율은 전투의 패배와 같은 큰 타격을 받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수치인 만큼 그만큼 조조군이 극단에 몰렸단 묘사로 봐야 한다.] 이렇게 조조는 당시 세력 범위의 절반에 해당하는 예주 전역의 지배권을 거의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는데, 예주는 '''황제가 있는 허도'''가 위치한 지역임을 고려하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예주에서는 오로지 양안군만이 여전히 조조를 지지할 뿐이었는데, 그나마도 군 내에서 원소에 호응하는 인물들(구공, 강궁, 심성)이 나타남으로써 불안정한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이통전, 조엄전) 예주 전체에서 일어난 반란과 지배권 상실로 조조군은 이후 군량 문제로 고심하게 되었으며, 설상가상으로 원소군의 보급선에 대한 공격으로 남은 보급라인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임준전) 또한, 원소의 본적이 있는 여남군에서는 선비와 문객들이 들고 일어나 원소의 편에 붙어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고, 원소는 이를 이용하기 위해 유비를 파견했다. 원소는 계속 진군하여 관도에서 버티는 조조와 공성전을 벌였다. 원소는 토산(土山)을 세우고 땅굴을 팠고, 조조 또한 안에서 이를 만들어 서로 대응했다. 원소가 둔영 안으로 활을 쏘니 화살이 마치 비처럼 쏟아져, 다닐 때는 모두 방패를 덮어써야 했고 군사들은 크게 두려워했다. 세력 내부에서의 반란이 가속화되고, 조조의 본대가 급격히 피폐해져 공성전에서의 승리도 장담할 수 없게 되자 조조군의 내부에는 원소와 밀통하는 자가 속출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조조 암살 미수 사건까지 발생했다. >조조의 호사 중 하나인 서타가 조조의 암살을 시도하나 [[허저]]에 의해 좌절된다. > ---- > 허저전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조조는 [[순욱]]에게 서신을 보내 허도로 돌아갈지 고심하며 의견을 묻는다. 순욱은 조조에게 버틸 것을 간언[* 연의에서는 순욱이 조조에게 답장을 보내면서 "(전략) 원소군 측에서도 큰 사건(=군량 수송)이 벌어지리라 예상합니다."라면서 복선을 뿌렸다. 여담이지만 연의에서 조조가 순욱에게 보낸 서신은 전달 도중 원소군에게 붙잡혀 [[허유]]가 갖고 있다가 조조에게 투항할 때 보여준다.]했고 조조는 그 의견을 받아들여 계속해서 관도에서 버티게 된다. 사실 이제 와서 천도를 한다고 한들 어디로 도망치겠는가? 조조는 이미 친원소 세력에게 포위되어 물러날 곳이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