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조/생애 (문단 편집) === [[적벽대전]] === 조조는 그대로 남하하여 [[적벽]]에서 손유 연합군과 싸운다.[* 조조는 애초에 형주를 공격할 생각이었고 또 유표가 조조에게 상당히 적대적이었으므로 항복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었으므로 손권과의 전쟁은 계획에 없었던 일임이 분명하다. 아마도 조조는 생각보다 쉽게 형주가 점령되자 내친김에 손권도 항복시키자는 생각이 강했을 것이다.] 때문에 적벽에서 맞붙었는데 겨울에는 전투를 벌이는 것은 드문 일이었고 조조군은 먼 거리를 행군하여 지쳤고 수전에 익숙한 상태가 아니었다. 이 전투는 조조가 직접 지휘하긴 했으나 수군을 지휘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질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상대한 [[주유]]와 [[유비]]는 뛰어난 군략가였다. 유비와 주유는 양자 간의 압도적인 전력 차를 화공으로 역전시켰으며, 서로 연합해 조조군을 무찌른다. 이것이 그 유명한 [[적벽대전]]이다. 조조는 적벽에서 상당한 손실을 보았는지 점령한 형주를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대로 철수한다.[* 무제기에서는 전염병 때문에 더 크게 피해를 받기 전에 물러났다고만 나오며 조조빠인 이문열도 평역 삼국지에서 별로 피해 안 받고 물러났다며 아득바둑 우겨댔지만 그동안 적극적인 공세를 내세우던 조조가 적벽대전 패배 후에는 수동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준 점과 남군에서 고군분투하는 조인을 도와주지 않은 점 등을 보면 전염병은 그냥 핑계이거나 전염병 징조가 있을 때 하필 화공을 당하자 전의를 상실해서 대패했을 가능성이 높다.] 장병의 희생을 무릅쓰고 화용도를 황급히 빠져나와야 할 정도로 위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유비군의 매복에 고생하는 연의에서의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조조삼소]]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러나 정사에서 퇴각할 때 모습을 보면 패주할 때 화용도가 진흙탕이라 부상병까지 동원해 서둘러 길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추가적인 사상자들이 나올만큼 초조해함을 알 수 있다.] 조조는 남군에 [[조인]]을 남겼는데, 적벽의 손실로 조인은 서황, 악진, 문빙, 이통과 함게 소수 병력만 가지고 주유와 유비에게 맞서야 했다. 조인은 주유에게 부상을 입히는 등 분전하며 일년을 버티나, 마침내 남군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 사이에 유비군은 형남 4군을 빼앗으며 조조를 따르지 않은 옛 유표의 병사들까지 접수한다.(208년 12월) 조조는 적벽에서의 패배로 말미암은 후유증 때문에 내정에 전념하며 군사 행동을 중지한다. (209년, 210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