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창 (문단 편집) === 후계자 쟁탈전 === 각각 바로 위와 아래의 형제인 [[조비]]와 [[조식(삼국지)|조식]]이 후계자 쟁탈전을 벌이고 있을 무렵 언급도 안 되었는데 이는 위에서 언급된 바처럼 글공부를 싫어하던 조창이 제왕으로서 적성이 맞지 않아서였다. 낙양에서 조조가 죽기 전 조창은 군대와 함께 장안에 있었는데 조조가 그를 급히 불러서 갔지만 이미 조조가 죽은 상태였다. 당시 조비와 측근들의 여론은 조창을 의식했기에 조조가 죽자마자 절차를 생략하고 조비의 즉위를 추진해 하루 만에 모든 일을 처리했다 한다. (진교전) 일단 군권을 쥐고 있었던 데다 조조에게서 호출됐다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인지 극도로 경계된 것으로 보인다. 비록 후계자 쟁탈전 때는 조조의 총애를 받던 재기발랄한 조식이 조비의 최대 경쟁자였지만 일단 조비가 아버지의 권력을 물려받은 후에는 한풀 꺾인 조식보다 일부 군권을 장악하고, 군부의 호의적인 지지를 받는 야심만만한 조창이 조비의 최대 정적으로 급부상했다. 뒤늦게 도착한 조창은 장례를 주관하던 [[가규]]에게 옥새의 행방을 물으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다가 가규에게 "대를 이을 사람은 따로 있으니 당신이 알 바 아니다."라고 무시당했으며 위략에 따르면 "선왕께서 나를 부르신 것은 너를 후계자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로 조식을 부추겼으나 조식은 [[원담|원씨]] [[원상|형제]]의 말로를 직접 보지 않았냐며 조창의 제의를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정사상 조조 사후 조창의 행적이 부실하지만 (위략을 배제하더라도) 가규와 실랑이를 벌이는 일화가 매우 위화감 넘치는 것은 사실이라 야심가였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종종 나온다. 이에 따르면 비록 군권을 쥐고 있었으나 군사력 이외의 정치적 입지는 전무했던 데다 그런 약점을 보완해 줄 조식과의 공조도 거절당해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허리를 숙인 것으로 보인다. 조비가 즉위하자 조창은 자신의 제후국으로 돌아간다. [[삼국지연의|연의]]에서는 [[가규]]가 저 발언 직후에 '군후(조창)께선 상을 치르려 오신 겁니까 아니면 왕위를 다투려 오신 겁니까?'라고 지적하고, 조창이 자신에겐 다른 뜻이 없다고 해명하자 가규는 다른 뜻이 없다면 왜 병력을 이끌고 왔냐고 다시 지적했다. 이에 조창은 병력을 물린 뒤 혼자 궁에 들어가서 상을 치루고, 병력을 조비에게 양도한 후 영지인 언릉으로 홀로 돌아가는 것으로 묘사한다. 220년 조비는 그에게 5천 호를 추가해주어 1만 호를 다스리게 하였고, 221년에는 공으로 봉하였다. 222년에는 그를 다시 왕으로 봉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