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총 (문단 편집) === "삼단 철포 혁명" ===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이 1575년 [[나가시노 전투]]에서 조총 부대를 유력하게 활용하며 전장의 승기를 잡은 기록도 있다. 오다 노부나가는 조총 부대를 셋으로 나눈 후 그 중 한 부대가 조준하고 발사하는 동안 다른 부대는 장전을 하여 전체적인 공격 중단 시간을 크게 줄임으로써 적 부대를 격파하였다는 것이 널리 퍼진 주장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결과에 따르면 삼단 철포 혁명으로 나가시노 전투를 이겼다는 것은 허구로 판명되었다. 여기에 더해 노부나가는 실제로는 이런 3열 교대식 사격 전술을 사용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전투 문서 참조. 게다가 삼단 철포 자체가 너무나도 당연해서 혁명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애초에 조총 이전에 [[재장전]]이라는게 필요한 무기가 없는 게 아니다보니 궁병도 유사한 방법으로 이미 운용하고 있었는데, 중국 [[송나라]] 때의 병서에 보면 [[쇠뇌]]로 3열 교대식 진을 치고 연달아 쏘는 형태의 진형이 등장했고, 일본에서도 이러한 교대 사격 전술은 나가시노 전투 훨씬 이전에도 사용된 바 있다. 1525년 [[프랑스군]]과 [[스페인군]]이 맞붙은 [[파비아 전투]]에서 스페인 소총수들이 이런 전술을 사용하였으며, 1526년 모하치 전투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예니체리]] 소총수들이 9열로 서서 교대 사격하여 [[헝가리]] [[기사]]대에 큰 피해를 주었다. 조총보다 점화 체제가 뒤떨어진 승자총통을 주력 개인 화기로 사용한 조선에서도 승자총통 창제자인 김지가 승자총통수를 3열로 배치해 교대 사격하는 전술을 생각해냈다. 또한 조총 자체가 근본적으로 유럽에서 들어온 것을 생각하면, 교대 사격의 개념 또한 유럽에서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다. 유럽에서의 교대 사격과는 양상이 다르고 유럽에서의 전투 양식으로 그대로 들여오려면 교관이 와서 훈련이라도 시키지 않는 이상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장전 시간이 길다는 문제 때문에 여러 명이 한 조를 이루고 교대로 사격한다"는 정도의 개념은 몇 마디의 말로도 쉽게 전해지는 만큼, 총을 전해주는 과정에서 군에서의 사용법에 대한 간단한 언급이라도 있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럽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