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해녕 (문단 편집) == 생애 == [[1943년]] [[11월 4일]] [[경상북도]] [[경산시|경산군]](現 [[경산시]]) [[와촌면]] 덕촌리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42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69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1년 제10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경상북도청]]에서 [[사무관]]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주로 내무부(現 [[행정안전부]]) 산하에서 근무했고, 1980년 3월 3일부터 1981년 1월 12일까지 [[https://www.yyg.go.kr/www/organization/headman_room/generations_headman|제29대]] 관선 [[영양군]]수, 1981년 1월 12일부터 1981년 12월 22일까지 [[https://www.gc.go.kr/mayor/contents.do?mId=0601030000|제26대]] 관선 [[금릉군]]수, 1988년 6월 4일부터 1988년 12월 31일까지 [[https://www.changwon.go.kr/cwportal/10671/10724/10726.web|제8대]] [[창원시장]] 등을 역임하였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1993년 12월 28일부터 1995년 3월 31일까지 제26대 관선 대구직할시장, 1996년 1월 31일부터 1996년 12월 19일까지 [[https://www.mois.go.kr/mns/sub/a02/MinistryofGovernmentAdmin/screen.do|제30대]] [[행정안전부장관|총무처장관]](現 [[행정안전부장관]]), 1997년 8월 6일부터 1998년 3월 2일까지 [[https://www.mois.go.kr/mns/sub/a02/MinistryofHomeAffairs/screen.do|제63대]] [[행정안전부장관|내무부장관]](現 [[행정안전부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대구광역시장]] 선거에 출마[* 당초 민자당에서는 [[이상희(1932)|이상희]] 전 대구직할시장을 영입하거나 [[정호용]] 의원을 출마시키는 방안을 고려했다.]하였으나 [[무소속]] [[문희갑]] 후보에 밀려 '''4위'''로 낙선했다. 당시 [[문민정부]]의 부산 편애론이 대구에 팽배했고,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가 선거를 2개월 앞두고 발생해 민심이 좋지 못했던 것이 그 원인이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무소속]] [[이재용(1954)|이재용]]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재임 당시 [[2003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올림픽 유치를 [[http://mnews.imaeil.com/SocietyAll/2002071612005503276|추진하기도 했다.]] 2004년 [[브랜드]] [[슬로건]] [[컬러풀 대구]](Colorful DAEGU)도 조해녕의 아이디어.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재선이 유력했으나, 임기 중 일어났던 [[대구 지하철 참사]]의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현실적 이유[*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을 당시에 뒷수습을 그야말로 엉망으로 했다.]로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다. 2008년 학교법인 영광학원([[대구대학교]])의 [[이사장]]으로 피선되었다. 2009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에 임명되었다. 2011년 7월부터 2015년 2월까지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행보로 인해서인지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50926.010030735470001|전직 민선 시장 중 평이 가장 좋지 않다.]] 역대 민선 대구 시장 중 부동의 인기 1위는 [[문희갑]] 전 시장이며, "[[떼법]] 위에 문법"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불도저같은 성향이라 간혹 지나친 불통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도심 녹지 확보, [[대구 도시철도 2호선|지하철 2호선]] 착공, 대구공항의 [[대구국제공항|국제공항화]] 등 굵직한 위업들을 달성했다. 반대로 가장 인기 없는 시장이 조해녕이다. 2020년대 들어 [[코로나19]] 대처 미흡으로 [[권영진]] 시장이 지지를 많이 잃긴 했으나, 아직도 대구에서 오래 산 중년층 이상을 대상으로 물어보면 조해녕 전 시장이 최악이라는 답이 심심찮게 들린다. 관선 대구시장과 민선 대구시장을 모두 지낸 유일한 인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