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희(후한) (문단 편집) == 후한의 대신(大臣) == 58년 절향후(節鄕侯)가 되었다. 60년 중산상(中山相) 설수(薛脩)[* 중산간왕 유언(中山簡王 劉焉)의 국상(國相)이다.]의 심문이 사실과 달라 태위직에서 해임되었다. 같은 해 겨울 두융(竇融)의 뒤를 이어 [[위위]](衛尉)가 되었다. 65년 [[우연(후한)|우연]](虞延)에 뒤를 이어 태위가 되었으나, 얼마안가 모친상을 당하자 조희는 상복을 입고 상을 치룬다고 말하였지만, 명제는 거절하고 사신을 보내 상복을 벗게하였다 75년 8월 명제가 죽고 [[장제(후한)|장제]]가 뒤를 잇자 조희는 명제의 장례를 주관하였다. 같은 해 10월 [[태부]](太傅)로 승진하고 녹상서사(錄尙書事)를 겸임하였다. 조희의 아들 7명은 모두 낭관(郎官)이 되고, 장남인 조대(趙代)는 황문시랑(黃門常侍)이 되었다. 80년 조희가 병이 위중해지자 장제는 친히 방문하였다. 5월 20일에 향년 84세로 사망했으며 시호는 정(正)이다. [[분류:후한의 태위]][[분류:기원전 4년 출생]][[분류:80년 사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