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희연 (문단 편집) == [[조희연/생애|생애]]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조희연/생애)] [[1956년]] [[11월 8일]], [[전라북도]] [[정읍시|정읍군]] 정주읍 연지리 미창동(현 [[정읍시]] [[연지동]] 미창마을) 348-6번지에서 정읍세무서 공무원 [[https://www.aladin.co.kr/author/wauthor_overview.aspx?AuthorSearch=@832585|조일환]](曺日煥, 1920 ~ 1997)의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선대의 고향은 [[정읍시]] 소성면 화룡리이다. [[전주풍남초등학교]]와 [[전주고등학교|전주북중학교]]를 졸업한 후, 1972년 서울 [[중앙고등학교]]에 입학[* 당시는 고등학교 입시시험이 있었으며 전기와 후기로 나뉘었는데 조희연은 전기 모집 고교 중 최고봉인 [[경기고등학교]]에 지원했다가 낙방했다. 전기모집 고교는 [[경기고]], [[경복고]], [[서울고]], [[용산고]] 등이 있었으며 이 학교에 낙방하는 학생들이 주로 지원하는 후기모집 고교가 [[중앙고]], [[중동고]], [[동성고등학교|동성고]], [[경동고]]였다.]하였고, 1975년에는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사회학과)에 입학했다. 1978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4학년 재학 중에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철폐하라’는 유인물을 배포하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2년·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했다. 이후 1979년 8월 15일 가석방으로 출소했으며, 전과로 인해 병역 면제 처리됐다. 그로부터 34년 후인 2013년 3월 21일,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 9호가 위헌이라는 결정([[https://casenote.kr/%ED%97%8C%EB%B2%95%EC%9E%AC%ED%8C%90%EC%86%8C/2010%ED%97%8C%EB%B0%9470|헌법재판소 2013. 3. 21. 선고 2010헌바70,132,170(병합) 전원재판부]])을 내렸고, 같은 해 7월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는 조희연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1990년부터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NGO대학원장, 시민사회복지대학원장, 일반대학원장, 기획처장, 교무처장, 민주자료관장, 민주주의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1991년 5월부터는 《월간 사회평론》의 편집기획주간을 맡았다.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 USC([[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초청되어 한국 관련 과목을 가르쳤다. 1994년 [[박원순]] 전 [[변호사]] 등과 함께 [[참여연대]] 창립을 주도했으며, 사무처장, 집행위원장, 정책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0년에는 [[중화민국]] 국립교통대학의 '사회조사 및 문화연구대학원'에 초청되어 1학기 동안 가르쳤으며, 2011년에는 일본 도쿄의 게이센 여학원 대학에서 1학기 동안 가르쳤다.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2004-2006년), 비판사회학회 회장(2006년)을 지냈다. 2014년 서울특별시교육감 선거 민주·진보 진영 단일 후보가 되었다. 선거 유세 초반은 [[문용린]]과 [[고승덕]] 두 보수 후보의 양강 구도로 흘러갔으나 조희연의 아들이 [[다음 아고라]]에 작성한 지지 호소문이 인터넷에서 호평을 받았고[[http://www.fnnews.com/news/201406011636383199?t=y|기사]] 결정적으로 선거 전날에 고승덕 후보의 '''[[못난 아버지를 둔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미안하다 사건]]'''이 터지며 중도층 표를 대거 흡수, 39.08%의 득표율로 당선에 성공했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민주·진보 진영 단일 후보로 출마했고, 46.58%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서울특별시교육감 민주·진보 진영 단일 후보로 출마할 [[https://n.news.naver.com/article/020/0003419570|예정이었으나]], 실제로는 강신만과 최보선 등 2명의 진보 후보가 추가로 출마해 단일 후보가 되지는 못 했다.[* 다만 강신만은 선거 막판에 조희연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했고, 최보선은 정책 연대를 하기는 했으나 끝까지 완주했다.] 서울특별시는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서울시장]]의 높은 지지율 등 보수에게 유리한 분위기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 후보의 난립 등 조희연 본인에게 각종 호재가 벌어지면서 서울특별시교육감 중 최초로 3선에 성공하게 되면서 역대 최장기 재임에 성공한다.[* 다른 이유로는 교육감 선거는 그 특성상 초중고생 학부모들 외에는 관심이 덜한데, 초중고생 학부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40대가 민주당 지지 성향이 전 연령대 중 가장 강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다만 그런 식의 논리라면 보수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이 없어야 하는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보수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이 8곳이나 됨을 고려하면 옳은 주장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보수 난립이 좀 더 심했을 뿐, 민주·진보도 난립이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난립을 감안해도 조희연의 전략이 더 포지티브했던 것도 감안해야 한다. 실제로 조희연이 3선을 한 2022년의 경우, 조희연은 포지티브 전략을 사용하고 "내가 당선되면 이러이러한 정책을 펼치겠다"는 식으로 비전을 강조했지만, 조전혁은 "전교조 OUT" 등 비전보다는 비난만을 강조했기에 전교조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교육감으로서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독으로 작용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경우라면 경기교육감에 나선 [[임태희]]처럼 교육과 연이 있고 해당 진영의 표를 확실히 자신 쪽으로 몰리게 할 수 있는 거물급의 출마가 이루어졌어야하나 도토리 키재기식으로 비슷비슷한 체급의 후보가 나와 표가 더 분산된 부분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