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종교 (문단 편집) === 이타성과 종교 === 대부분의 종교는 공통적으로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살면서 다른 사람을 위하라'''고 가르친다. 물론 교리부터가 개판 5분 전인 종교도 역사상에 존재하지만, 그런 종교는 일반 사회의 배척을 받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해 교세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사 이래 종교는 넓게는 [[세계구]]급 [[전쟁]]부터 시작해서 좁게는 [[키배]]를 유발하는 [[떡밥]] 자리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종교가 갈등의 선동자로 여겨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인류학]]자 스캇 에트란의 연구에 따르면[[http://www.foreignpolicy.com/articles/2012/08/06/god_and_the_ivory_tower|#]] 3,500년 동안의 주요한 충돌 중 60%가 종교적인 동기 없이 이루어졌으며, 종교적인 동기에 의해 야기된 전쟁은 7%에 불과한 소수라고 한다. 종교적 동기와 전쟁 사이의 연관 관계를 0~5 단계로 나누어서, 그 중 3단계 이상의 것이 7%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저서 [[만들어진 신]]에서 설령 전쟁의 동기가 종교가 아니더라도 종교가 전쟁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쓰이는 예는 수도 없이 많으며 그것만으로도 종교의 역기능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종교적인 것과 이타적이거나 많이 베푸는 행동 사이의 관계(Religiosity and Generosity)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아직까진 단일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어떤 연구들[* 관련 논문을 찾고 싶다면 다음에 나온다. Applegate, Cullen, Fisher, & Ven, 2000; Galen, 2012; McKay & Whitehouse, 2014; Sablosky, 2014; Shariff, Piazza, & Kramer, 2014; Decety, Cowell, Lee, Mahasneh, Malcolm-Smith, Selcuk, & Zhou, 2015.]은 [[독재자]] 게임(dictator game)과 같은 다양한 가상적 상황에서 종교인들이 비종교인들보다 더 이기적인 선택을 보임을 발견했다. 게다가 이들은 실제 사회적 상황에서의 자신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자뻑|자기 자신이 굉장히 이타적이며 활수한 사람이라면서 스스로의 친사회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 학문적으로는 moral self-enhancement라고 하며,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의 한 종류로 보고 있다.]을 보인다고 한다. 한편 진화심리학자 아라 노렌자얀(A.Norenzayan)[* 얼핏 생소한 이름처럼 보이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진화심리학계의 잘 나가는 중진 학자 중 하나다. 2008년에는 《사이언스》 지에 종교적 친사회성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http://www.sciencemag.org/content/322/5898/58|논문]]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고, 연구방법론 상으로도 학계에 처음으로 [[WEIRD 문제]]로 통칭되는 표본편향(sampling bias) 문제를 제기한 인물이기도 하다.]은 종교의 친사회적 가치를 역설했는데, 한 논문에서[* Sheriff & Norenzayan, 2007.] 그는 [[십자가]] 등의 신적인 심상으로 점화(priming)된 개인은 자원배분 게임에서 유의미하게 후하게 베풀어주는 모습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이유인즉슨, "[[지켜보고 있다|은연중에 신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만들어서]]" 더욱 친사회적으로 나누어주고 베푸는 행동으로 유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실제로 그리스도교 계통에서 말하는 "[[코람 데오]]"(Coram Deo) 정신과도 통한다. 이 라틴어의 뜻은 대략 "신 앞에서"로, 종교개혁가들의 슬로건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다른 진화심리학 논문에서도[* Johnson & Bering, 2006.] 종교의 친사회성을 강조했는데, 여기서의 설명은 "[[신|초자연적 실재]]의 [[지옥|처벌에 대한 공포]]가 개인으로 하여금 자기 이익만을 무절제하게 추구하지 못하도록 붙잡아 줄 수 있다" 는 것이다. 이렇듯 종교와 도덕성의 상관관계는 아직 미궁 속에 있으며 다른 주제들이 그렇듯 단순한 관계가 아닐 확률이 높다. 이러한 종류의 연구에서는 내집단/외집단 변인[* 즉 위에서 화이트가 말한 "자기 종교 구성원에게 한정된 선행과 이타성" 을 말한다.]이나 사회경제적 지위(SES) 및 참가자 교육년수 변인[* 보통 종교인들의 문제점이라고 거론되는 것들은 저소득층+ 저학력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즉, 종교인의 어떤 특성에 대해 연구할 때에는 부유한 종교인 대 부유한 비종교인, 가난한 종교인 대 가난한 비종교인 식으로 비교해야 하지, 그냥 싸잡아서 종교인 대 비종교인 식으로 연구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의 통제 문제, 내적 종교성과 외적 종교성 여부[* 예컨대 한 고전적인 연구에서는(Allport & Ross, 1967) 독실하게 종교적 교리를 따르고 자기 자신을 갈고 닦는 사람들은 이타적이고 개방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단지 외적으로 인간관계를 맺고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 "교회만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은 심각한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더라는 보고도 있었다.]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연구자(들)의 종교적 배경이 무엇인지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한편 종교인들은 유의하게 더 불의(injustice)에 대한 민감성이 높고, 타인의 잘못에 대해 관용보다는 엄정한 처벌을 원하며, 때때로 이것은 [[엄벌주의]]로 연결되곤 한다는 연구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꼭 사적 제재와 같은 수단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진 않는다. 어떤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심지어 "[[하느님]]에게 처벌을 [[아웃소싱]]한다" 고까지 했을 정도였다.[* 예를 들어 큰 죄를 짓고도 벌을 받지 않은 사람을 보고 종교인이 '저거 나중에 지옥갈거다.', '다음 생에 편히 못 살거다.' 라고 하며 체념 아닌 체념을 하는 것이 이런 측면을 보여준다. 사실상 신분제가 존재하는 인도에서 전생에 대한 믿음이 특히 강한 것도 관련이 있어보인다. '내가 지금 핍박 받고 살지만 다음 생에는 좋은 신분으로 태어나겠지', 내가 못사는건 전생에 죄를 지어서겠지.'라는 생각했다. 이를 통해 종교가 개인이 저항할 수 없는 불의에 대한 심리적 도피처, 나쁘게 말하면 정신승리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의견도 있으며 이는 사회적으로 보면 불의에 대한 방치로 이어지게 된다. 괜히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불리는게 아니다.] 그러나 이런 지각된 정의(perceived justice)의 측면에 대해서는 무조건 나쁘다기보다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적응적이고 친사회적인 측면도 있으니만큼, 이를 근거로 "그러니까 종교는 좋다/나쁘다" 같은 식의 초보적인 이분법적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록 현대 법학의 흐름이 회복적 정의에 초점을 두고 있긴 하지만, 개인이 종교가 있든 없든 우리 사회에서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의 가치는 분명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더 자세한 내용은 [[도덕과 종교의 관계]] 문서도 같이 볼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