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종기 (문단 편집) === 원인 === [[모낭]](털구멍)의 염증이 가장 흔한 원인이나 피하에 작은 [[낭종]]이 형성되어 [[감염]]이 생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보다 더 깊은 범위의 감염일 경우에는 종기라고 칭하지 않는다.[* 사실 조선시대에는 봉와직염과 단독(erysipelas)도 종기의 일종으로 취급했다] 보통 종기가 발생하는 원인으로 비[[위생]]적인 생활습관만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면역계|면역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질환이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피부의 [[세균]] [[감염]]을 쉽게 처치하지 못하고 점점 악화되는 것. [[당뇨]] 등 만성 질환을 가진 환자에게 종기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나이와도 관련이 있어서, 면역력이 좋은 젊은 시절에는 종기로 인해 죽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이러한 생활 패턴과 나이로 인한 면역력 악화가 겹치면 간단한 질병이었던 것이 난치병으로 돌변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선 조선 왕들이 젊을 때 걸리면 끙끙거리며 버티다가 나이가 들면 죽고는 했다. [[현대]]에는 의료 기술이 발달해서 [[여드름]]처럼 가벼운 피부 질환 정도로 여기기 쉽지만,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치료가 쉽지 않은 [[난치병]]이었다. 현재는 소독약과 항생제가 발달하여 상처를 소독을 하고 항생제를 투여하며, 필요하면 외과수술로 고름이 차지 않도록 한다. 과거에는 상처 및 감염으로 고름이 차는 일이 흔했고, [[항생제]] 및 상처 소독 기술이 미비하다보니 외과수술로 종기를 제거하기 쉽지 않았다. [* 조선시대에도 외과시술은 있었고, 실제로 시행된 경우도 많았지만 소독기술의 부족으로 위험성이 높았다. 이는 비단 조선뿐만 아니라 조선보다 수술기술이 더 발달된 인도나 아랍, 유럽에서도 소독기술의 부족으로 수술하다가 사망한 경우가 많았다. 이는 19세기까지 이어져서 피묻은 앞치마가 의사의 상징이 되기까지 했으며 환자를 돌보고 다른 환자를 돌보기 전에 손을 씻게하는 것만으로도 병자의 사망률이 엄청 낮아질 정도였다. 더군다나 항생제의 경우에는 '''1928년'''에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처음 발견한 게 그 시작이니, 발견되고 발명된 지 [age(1928-01-01)]년밖에 되지 않은 의학기술계의 혁명이다.] 특히 환자가 왕인 경우는 소독을 안 하고 시술했다가 죽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물론 왕이라고 해서 외과시술을 아예 안한 것은 아니고 침으로 고름을 따내기는 식의 치료는 했다. 물론 [[효종(조선)|조선 효종]]의 경우에는 어의 신가귀[* 조선시대에 왕이 승하하는 경우 어의에 대한 처벌은 대체로 형식적인 면이 강했으며, 잠시 귀양을 보냈다가 복직시켜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신가귀의 경우에는 '''수전증'''으로 인해 침을 잘못 놓으면서 과다출혈을 일으켰다. 결국 신가귀는 왕을 사망케 한 벌로 사형에 처해졌다. 신가귀의 사형은 조선왕조 500년 간 어의 중에서 유일하다. 그나마도 원래는 참수형이었으나, 교수형으로 형이 낮춰졌다.]가 종기가 난 부위를 잘못 땄다가 세상을 뜬 사례가 있었으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