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종기 (문단 편집) === [[한국사]] 속의 종기 === 꽤 많은 왕들을 고생시킨 병 중 하나다.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도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등에 난 종기인 등창이 악화된 끝에 그 등창이 터져서 죽었고[* [[후삼국 시대]]를 소재로 한 [[한국 사극]] [[태조 왕건]]에서도 [[견훤(태조 왕건)|견훤]]이 말년 점점 등창이 악화되는 묘사를 넣었는데, 하필이면 고대에 정말 더욱 치료하기 어려운 [[등]]에 난 종기인데다가 그 종기도 일반 종기가 아닌 등창인지라 배우 [[서인석]]의 실감나는 명품 연기까지 더해져서 악화된 상태만 봐도 그냥 보기만 해도 정말 고통스러움이 느껴질 정도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문종(조선)|문종]][* 등에 난 종기의 크기가 무려 30cm였다고 한다.], [[성종(조선)|성종]][* 결핵, 천식으로 고생하다가 배에 난 종기가 악화되어 사망했다.], [[정조(조선)|정조]][* 등과 머리에 수많은 종기가 났다고 한다.]가 종기로 인해 직접적으로 목숨을 잃었고, [[효종(조선)|효종]][* 얼굴에 악성 종기가 나서 침으로 땄다가 어의인 [[신가귀]]가 [[수전증]]으로 인해 혈관이 지나가는 부위를 같이 따 내는 [[의료사고]]를 일으켜 과다출혈로 사망했다.]은 그로 인한 의료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세조(조선)|세조]][* [[야사(역사)|야사]]에 의하면 형수 [[현덕왕후]]가 꿈에 나타나 "네가 [[단종(조선)|내 아들]]을 죽였으니 나도 [[의경세자|네 아들]]을 죽이겠다!"라는 말을 하며 자신에게 침을 뱉었는데, 그 다음부터 종기가 생겼다고 한다.], [[광해군]], [[현종(조선)|현종]] 등 27명의 왕 중 무려 12명이 종기로 고생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밤이 깊은 뒤에 잠깐 잠이 들어 자고 있을 때 피고름이 저절로 흘러 속적삼에 스며들고 이부자리까지 번졌는데 잠깐 동안에 흘러나온 것이 거의 몇 되[* 1되는 약 1.8리터다.]가 넘었다.[* 그릇으로 거의 몇 잔을 쏟았다. 다행히 숙면을 취하게 되었으나 그리 앓은 얼마 뒤 신하들과의 면담 도중 쓰러지고 말았는데, 약을 넘기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숨졌다.] >---- >[[정조실록]] 정조 24년(1800) 6월 25일 여기 나오는 6월 25일은 음력이다. 양력으로는 8월 15일인데, 그 무더운 여름날 '몇 되'나 되는 고름을 쏟으며 고생했다고 하니 고통이 얼마나 끔찍했을지 짐작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처음에는 피재길이 만든 고약으로 종기를 치료했지만, 생활 습관의 문제로 결국 재발했고[* 정조는 평소에도 업무 과다로 [[스트레스]]에 시달렸는데다가 [[술]]과 [[담배]]를 매우 즐겼다.], 고약도 내성이 생겨서 약효가 떨어진 데다가 다른 합병증까지 겹쳐서 결국 승하했다. 정조는 8월 18일 승하했는데, 음력이므로 한달 반 뒤에 승하한 것. 조선의 국왕들이 종기에 시달렸던 것은 당시의 의술 탓도 있겠지만, 과도한 업무로 인한 [[피로]]에 [[과식]]과 [[운동]] 부족, 수면 부족[* 기록에 의하면 국왕은 과중한 업무로 1일 평균 수면 시간이 5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등 면역력이 약해지기 쉬운 환경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조선 왕실의 유전적 내력이라는 추측'''도 있다. 당시에 항생제 등 의학이 부족한 것도 맞았고 조선의 임금들이 과도한 격무에 시달린 것은 맞으나, 그것만이 원인이라면 다른 고관대작들이나 조선이 아닌 전근대 동아시아의 다른 군주들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야 정상이다. 하지만 유독 조선의 임금들만 종기, 등창으로 고생한 기록이 많이 나오고 고려나 삼국시대 국가들, 일본이나 중국의 기록에는 그러한 부분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당시 앉아서 학문만 공부하던 선비들이 종기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록 등이 나타났을 것이다. 마치 디스크, 고혈압, 당뇨병 같은 성인병이 현대인들의 질병이라 전세계인이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허나 이러한 기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종기에 걸리기 쉬운 환경에 노출된 것은 맞지만 그것이 유독 조선 국왕들에게 도드라져 보였던 이유는 집안 내력이 아닐까 하는 추측.[* 비슷한 사례로 [[고구려/왕조|고구려 국왕]]들의 꽤나 긴 재위 기간이 있다. 유독 평균 재위 기간이 긴 편이고 수명도 오래 산 임금이 많아서 이 또한 장수 유전자의 영향이 아니냔 추측이 있다.] 사실 지금은 소독한 바늘 같은 걸로 쿡 찌르고 쭈욱 짜 낸 다음에 깨끗하게 씻고 소독하고 뜨거운 방에서 자면 나아버리는 게 종기겠지만, 바늘 소독도 안 되고[* 지금이라면 [[약국]]에서 몇 천원에 알코올을 사 소독하면 그만이지만, 당시에는 그게 아니었다. [[염소]]나 [[알코올]] 같은 수단이라도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당시의 [[조선]]의 의학과 과학 수준으로는 그걸 인지하기도 어려웠으며, 값도 상당히 비싸고 과정도 몹시 복잡해 일반인이 사용하기에는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아편]]과 [[에테르]], [[모르핀]] 같은 약물로 마취를 하는 것도 근대의 일이었다. 단 술, 즉 알코올을 이용한 소독 개념은 의외로 고대부터 있긴 했었다. 의료를 의미하는 한자인 醫의 의미 부터가 상처 부위에 술을 붓는다는 뜻이기 때문.] 상수도가 없으니[* 완벽한 [[수도(시설)#s-2|상수도]]를 모두 갖춘 도시는 최근의 일이었다. 일반 서민들이 사는 마을은 [[우물]]이나 [[하천]]이 주된 생활용수 공급처와 빨래터의 역할을 했다. 문제는 이러한 물은 오염의 가능성을 피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씻기도 어렵고[* 처치 후 소독하기도 어려웠는데다 왕쯤 되면 초기 치료도 어려웠을테니 염증이 커져서 병도 확대되었을 것이다. 특히 종기가 터지면 상처에 물이 들어가면 안된다. 여기서 강조하는 상수도의 중요성은 공급되는 물 자체가 소독과정을 거치며 이렇게 공급된 깨끗한 물로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목욕 등을 통해 악성 균을 제거하여 종기가 발생하는 사례를 획기적으로 예방할 수 있었다는 점에 있다.] 거기다 주요 장기와 먼 엉덩이 종기라면 모를까 등허리에 종기가 나서 커지기까지 했다면...[* 역사적으로 국가를 통치했던 군주들은 과도한 업무에 그로 인한 운동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거기에 [[수라]]와 같은 고열량의 식단들은 [[당뇨]]와 같은 합병증을 불러왔다. 조선왕조의 [[세종(조선)|세종]]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신발 벗고 돌싱포맨|돌싱포맨]] 3화에서 [[이상민(룰라)|이상민]]이 수술로 종기를 제거하고 회복실에 있을 때 [[탁재훈]]이 "네가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난 게 다행이지, 옛날에 태어났으면 넌 죽었어. 옛날에 왕도 (종기로) 죽었는데 네가 무슨 수로 살아남았겠어?"라고 말했는데, 이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