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근 (문단 편집) == 생애 == 기록에 의하면 주근은 본디 [[마한]] 출신 장수로서 [[삼국사기]]상 기록으로는 서기 9년에 마한이 백제에게 패하면서 밀려나자 백제에 복속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삼국사기에서는 이 때 마한이 멸망했다고 되어 있다.[* 다만 [[고고학]]적으로는 마한의 멸망은 훨씬 이후로 추정되기에 이 기록은 부정되는 편이다.] 서기 16년(온조왕 34년), 주근은 우곡성[* 위치 미상. 온조왕의 아들 다루왕 대에 같은 지명이 나오긴 하나, 다루왕 대에 쌓은 우곡성(牛谷城)의 경우 말갈(동예)에 대비해서 쌓았다는 기록이 있어서 주근이 웅거한 우곡성과 동일 지역인지는 알 수 없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도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 명단에 우곡성을 기제했다. 21세기 들어 한성백제박물관이 발간한 백제사시리즈 제2권에서는 우곡성의 위치를 경기도 동북부로 비정하기도 했다. 백제가 충청도 내륙 북부에 소재한 [[목지국]] 및 목지국을 여전히 따르는 마한 거수국들을 해체할 때 그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사민하는 일이 잦았던만큼, 아마 목지국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백제 직접 지배지인 경기도 동북부로 옮겨진 이주민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는 의견도 있다.]에 웅거해 반역을 시도했지만, 온조왕은 5천 군사로 하여금 이를 진압하게 했으며, 싸움에서 패한 주근은 결국 자살했고 백제인들은 그 시체를 허리를 끊어버리고 처자를 잡아 죽임으로써(...) 본보기를 보였다고 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