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기율표 (문단 편집) == 역사 == [[드미트리 멘델레예프]]가 최초의 주기율표를 고안해 냈으며 이 공로로 1906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할 뻔했으나 '''한 표'''가 모자라서 수상에 실패했다.[* 수상자는 [[플루오린]]의 분리에 성공한 [[앙리 무아상]]. 사실 플루오린은 그 무지막지한 반응성 때문에 순수한 형태로 분리하는 게 지극히 어려우니, 무아상의 공로도 적지 않다.] 그 역사는 초기 [[화학]]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화학 교육도 이론적인 부분을 여기서 시작한다. [[존 돌턴]]의 [[원자설]]이 등장한 이후 근대 화학은 맹렬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그 발전 과정에서 다양한 원소들이 발견됐다. 이 원소들은 특정한 성질을 공유하는 그룹으로 묶일 수 있었고, 따라서 원소들이 보이는 주기성에 관한 다양한 해석들이 나왔다. 그렇지만 이런 주기성에 대한 해석들은 전부가 주류가 될 만큼 인정받지 못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 당시에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원소도 있었고 원소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아닌 것도 있었으며, 또한 이런 특성과 주기성을 연결하기 위한 현재의 원자번호에 해당하는 개념이 정착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론들은 그야말로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당연히 이런 이론들은 나오기 무섭게 무차별로 공격당하고는 사라졌다. 이 쪽으로는 뉴랜즈의 옥타브설이 유명한데, [[통합과학]] 1단원 중에 옥타브설이 소개된 부분이 있으니 그 곳을 참고하면 2주기까진 그럭저럭 맞아떨어지다가 3주기에 들어가서는 주기성이 사정없이 깨지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문제도 있고, 당시 화학계에서 뉴랜즈는 이 가설을 발표하고 나서 '''화학 원소 가지고 음악이라도 연주하는 거냐?''' '''알파벳 순서로도 한번 배열해보지?'''란 비판을 들었는데, 이 때문에 '''실망해서 과학을 포기'''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가 인정을 받고 난 뒤 (1872년, 22년 뒤) 영국 화학회에선 뉴랜즈의 시도도 의미가 있었다고 하며 나중에 불러 상을 주었다고 하니 인간만사 [[새옹지마]]. 어쨌든 이런저런 각종 잡설이 난무하던 화학계에 빛을 던진 것이 바로 멘델레예프. 그는 이 주기율표를 원소들이 적힌 [[플레잉 카드]]로 카드 게임을 하다가 생각해냈다고 하며,[* 그래선지 대부분의 [[화학 1]] 교과서에선 주기율표를 설명할 때 원소 카드를 갖고 --그가 갖고 놀던 방식으로 재현은 못하겠지만-- 카드 놀이를 하는 활동을 시킨다.] 원자량과 화학적 성질을 통해 현 주기율표의 원초적인 형태를 고안해냈다. 이 원초적인 형태는 주기율표의 1~3주기에선 현재도 거의 그대로 쓰인다. 소위 '''단주기 주기율표'''라고 부르는 그것. 멘델레예프는 위에서 언급된 장애물을 오히려 반대로 이용했다. 주기성을 훼손시키는 원소에 대해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소가 사이에 있음을 가정하고 자리를 비워놓은 후 주기성에 입각해서 물리화학적 특성을 거의 정확히 예언했고, 원소로 잘못 인지된 화합물은 과감하게 빼버렸으며, 다른 사람이 발견한 원소의 특성에 대한 보고서의 잘못된 부분을 보고 주기성을 감안하면 잘못된 결과이니 다시 실험해서 수정하라는 조언까지 하기도 했다. 물론 멘델레예프와 그의 이론이 신은 아니었으므로 그가 말한 이런저런 예언이나 설명이 전부 맞아떨어진 건 아니지만[* 실제로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에서 원소로 오해했던 혼합물 [[디디뮴]]이 있다.], 아래 표처럼 맞힌 게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정확했기에 묻혔다.''' ||<-4> {{{+1 '''멘델레예프가 예측한 에카-규소와 실제 [[저마늄]]의 특성 비교'''}}} || || '''대상/성질''' || '''멘델레예프의 [[1871년]] 예언''' || '''실제 측정해서 얻은 값''' || '''오차''' || || 원자량 || 72 || 72.64 || -0.64 || || 밀도, g/cm^^3^^ || 5.5 || 5.323 || +0.177 || || 녹는점, °C || 높음 || 938.25 || || || 비열, J g^^-1^^K^^-1^^ || 0.305 || 0.309 || '''-0.004''' || || 원자가 ||<-2> 4 || '''정확''' || || 색 || 진한 회색 || 회백색 || || || M을 얻는 방법 || MO,,2,,나 K,,2,,MF,,6,,와 Na와의 반응 || K,,2,,GeF,,6,,와 Na와의 반응 || || || M의 반응성 || 산에 약간 녹으며, 알칼리와는 반응하지 않음 || [[염산|HCl]]이나 묽은 [[수산화 나트륨|NaOH]]엔 안 녹고, 뜨거운 진한 [[질산|HNO,,3,,]]와 반응함. || || || 산화물 MO,,2,, || 녹는점 높음, 밀도 4.7 g/cm^^3^^ || 녹는점 1388°C, 밀도 4.226 g/cm^^3^^ || 밀도 +0.474 || || 황화물 MS,,2,, ||<-2> 물에 안 녹음, (NH,,4,,),,2,,S[* 황화 암모늄.]에 녹음 || '''정확''' || || 염화물 MCl,,4,, || 끓는점<100°C; 밀도 1.9 g/cm^^3^^ || 끓는점 83°C; 밀도 1.879 g/cm^^3^^ || 끓는점 +17°C, 밀도 +0.021 || || M(C,,2,,H,,5,,),,4,, || 끓는점 160°C || 끓는점 184°C || -24°C || ||<-4> {{{-2 [[:파일:external/ncc.phinf.naver.net/13.jpg|이미지로 보기]]}}} - {{{-2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44&contents_id=7774&series_id=1952|출처]]}}} || 위 표와 같이 존재조차도 모르던 원소의 물리량이나 화학적 특성을 발견하기도 전에 작두탄 수준으로 맞혔으니 주목을 안 받을 수 없다. 이 사례는 대한민국 화학II 교과서에도 단골로 나올 정도며, 멘델레예프는 에카-규소 이외에도 에카-붕소([[스칸듐]])[* 하지만 정작 주기율표에서 [[붕소]] 아래에는 [[알루미늄]]이 있고, [[스칸듐]]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물론 그 당시에서는 맞다고 생각했을 수 있겠다.], 에카-알루미늄([[갈륨]]), 에카-망가니즈([[테크네튬]]) 등을 기가 막히게 맞춰냈다. 이후 [[헨리 귄 제프리스 모즐리]]란 비운의 천재가 이전의 원자질량 구분법으로 인한 화학적 성질과 원자량의 불일치를 X선으로 원자번호를 결정하는 방식(=핵의 [[양성자]] 수)으로 해결해내면서 현재의 주기율표[* 주기율표의 순서는 양성자 개수의 순서]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 또한 [[갈리폴리 전투|전사하는 바람에]] 노벨상을 못 받았다. 훗날 멘델레예프는 사후 이 엄청난 공적을 인정받아 101번 원소의 이름이 [[멘델레븀|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지게 된다]]. 참고로 불안정한 게 그의 말년 성격과 닮았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