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룽지 (문단 편집) == 기타 == * 부인 라오안(劳安) 여사는 같은 칭화대학 전기공학과 출신으로 캠퍼스 커플이었다고 한다. 라오안도 기술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 자식은 둘이 있는데 장녀 주옌라이와 차남 주윈라이는 모두 금융쪽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중국 정치상 이렇게 부모를 고관으로 둔 기업인은 꼭 잡음을 일으키기 마련인데[* 전임 [[리펑]] 총리의 딸인 리샤오린은 [[재벌]]로 성장하여 떼돈을 벌었지만, 부패문제에 연루되어 물의를 일으켰고, [[시진핑]] 정부의 압력때문에 모든 지위를 사임했다.], 주룽지의 자녀들은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 자녀들도 그렇지만 주룽지 본인이 부패에 정말로 혹독하게 엄격했다. '''"100개의 관을 준비해둬라. 그 중 하나는 나를 위한 것이다."'''는 주룽지의 대표적 어록 중 하나다. * 2009년에 낸 회고록은 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 은퇴생활은 [[호금]]([[해금]]과 비슷한 악기)을 연주하는 것으로 소일한다고 한다. * 2019년 10월 1일 열병식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서 건강이 나쁘다는 소문이 있다. 당시 91세였다. 그러나 동갑인 전임 [[리펑]]과 후임 [[리커창]]이 연달아 별세하는 상황에서도 최고령 전직 총리로 있다. * 홍콩에서는 평가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794403?sid=104|#]] * 1990년 [[상하이]] 시장 시절 주룽지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외국인들은 그를 중국의 근본적 체제 개혁을 꾀하는 개혁가로 여겨 칭찬의 의미로 '''중국의 [[고르바초프]]'''라고 부르기도 했으나[[https://www.washingtonpost.com/wp-srv/inatl/longterm/china/stories/zhu030598.htm|#]], 정작 본인은 이를 심각한 모욕으로 여기고 '나는 중국의 고르바초프가 아니다. 나는 중국의 주룽지다'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 정계에서는 동구권의 붕괴를 목도하고 [[천안문 6.4 항쟁|천안문 사태]]를 겪으면서 급격한 개혁개방은 필연적으로 중국의 체제 붕괴를 불러올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고, 이런 사례를 남긴 대표격 인물인 고르바초프에 대해서는 평이 매우 나쁜 편이었다. 물론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하다.] 주룽지 본인도 자본주의를 지향한 경제적 개혁과 자유화는 지지했으나 민주주의와 중국 공산당 체제 붕괴에 대해서는 전혀 호의적이지 않았으므로 이런 반응이 나온 것이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차라리 [[대만]]의 [[장징궈]]가 [[대만|중국]]의 고르바초프라는 별명에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대만/영유권 주장 지역|중국 전체]]를 민주화하지는 못했고 [[대만|중국]]의 [[대만성|일]][[푸젠성(대만)|부분]]만 민주화시켰지만... 근데 장징궈는 나이가 고르바초프 삼촌뻘이다...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을 직접 겪은 사람이 죽어서, 그때 초등학생 어린이에 불과했던 고르비랑 비교당한다면...-- 애당초 고르바초프는 서방에서나 평가가 높지, 중국이나 러시아에서는 나라를 말아먹은 실패한 정치인으로 보고 있고, 주룽지 입장에서야 당연히 그런 실패한 사람과 자기를 비교하는 것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 최근 2022년에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의하면 [[시진핑]] 주석이 3연임을 앞두고 주룽지는 그의 장기집권 추진을 비판하였다고 한다.[[https://news.v.daum.net/v/20220317212518145|#]] * 경제활성화를 위해 교육과 부동산, 교육 부문을 부분 민영화하는 정책을 폈다. 우선 중앙정부의 세수를 늘리는 목적으로 지방세를 대폭 축소했고 이를 기존의 임대주택들을 대규모로 민간에 불하하고, 부동산 매각 대금으로 지방정부 재정을 충당시켜서 지방정부 세수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사립대 설립규제를 푼것이다. 이에 따라 부동산값 인상으로 주요 도시지역 주민들의 구매력이 크게 높아지면서 중국이 IMF 외환위기에서 큰 타격을 입는일 없이 엄청난 경제성장을 촉진시켰고,[* 중국 대도시 주민들의 구매력은 이미 2010년대 초반에 선진국 수준에 달했다. 중국의 대도시들 급여수준이 그나마 하위권 선진국 수준이라도 다달은것은 이 보다 몇년 늦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에는 부동산 값 상승으로 달성한 성과이다. 물론 그 대신 집값은 중국 서민들의 수십년치 급여 수준, 도심지는 수백년치 급여수준으로 올랐기 때문에 사회 초년생들은 사다리 걷어차기를 당한 셈이 되기도 했다.] 사립대 설립에 따라 대학 정원도 크게 늘어 중국인들의 학력수준을 증대시켰지만 이것이 나중에는 청년실업과 소득대비 과중한 부동산값, 지나치게 부동산 의존적인 지방정부 재정 등 중국이 겪고있는 사회문제들을 배양시켰다는 점에서 마냥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힘든 조치다.[* 이래서 2020년부터 시진핑는 다시 대학정원 수를 줄이고 있고, 대학 입시 압력을 경감시키기 위해 많은 인문계 고교를 실업계로 전환하고 있다.] 이러한 부동산 광풍문제는 이미 주룽지 총리 재임 말기에 불거져서 주룽지 자신의 퇴임사에도 부동산 거품이 문제점이라고 언급할 정되였다 [각주] [[분류: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총리]][[분류:중국공산당 13기 중앙위원회 후보위원]][[분류:중국공산당 14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분류:중국공산당 15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분류:중국공산당 상하이시 서기]][[분류: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상무부총리]][[분류:1928년 출생]][[분류:창사시 출신 인물]][[분류:칭화대학 출신]][[분류:중국의 무종교인]][[분류:중국인민은행장]]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