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승비 (문단 편집) === 남송의 재상 === 건염 원년 주승비는 중서사인으로 임명되고 직학사를 대리하였다. 주승비는 고종에게 다음과 같은 상소를 올렸다. >인의란 천하를 좌우하는 큰 권력으로, 중국이 이것을 가지면 오랑캐들이 복종하고 제후가 우러러보며, 단지 권력을 잃어버리면 사이(四夷)가 여러 차례 침입하는 근심을 끊지 못합니다. 우리나라가 [[거란]]과 결연을 맺고 백여 년이 지나, 일단 거란의 어지러움에 타서 멀리 [[금나라]]와 교유하여 요나라를 협공할 계획을 세웠으니, 이것은 중국이 그 권력을 잃은 것이고, 밖으로는 모멸을 불러온 것입니다. 폐하께서 즉위하셨으니, 마땅히 처음의 도리를 올바르게 밝히고, 그것이 인의에 맞는지 생각하고 행하시며, 맞지 않는 것은 버리신다면, 사이를 물리치고 대업을 계승하여 회복하실 수 있습니다. >---- >{{{#!wiki style="text-align: right" '''『[[송사]](宋史)』'''}}} 또한 총제사(總制使) 전개(錢蓋)가 승진하자, 주승비는 전개가 전개가 섬서(陝西) 제치사(制置使)로 있을 때 군대를 버리고 나라를 그르쳤으니 임명 조서를 전개에게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청하였고, 결국 전개는 면직되었다. 1128년 주승비는 상서우승(尚書右丞)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재상의 자제들이 음서로 관직에 진출하는 권한이 남발되자 주승비는 이를 문제삼기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