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일귀 (문단 편집) == 생애 == 1690년 복건성 장주부에서 태어났으며, 20세의 나이에 대만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오리치기를 생업으로 삼았다. 주민들과 친해 평판이 좋았다고 전해진다. 1720년 대만은 지진과 기근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고, 관리 왕진(王珍, ? ~1721)의 폭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잡혀가고 재산을 강탈당하자 사람들은 주일귀를 원사(元師)로 하여 일명 주일귀사건(自朱一貴事件)을 일으켰다. 이후 주일귀 세력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청군의 무기를 갈취해 무장하였으며 주일귀는 주씨인 점이 주목되어 중흥왕(中興王)에 즉위, 수만명으로 불어난 주일귀 세력은 대남(臺南)에 입성하는데 성공한다. 약 10일만에 점령하는데 성공한 것이며 그곳의 물자들을 주민들에게 배분한 뒤 병사들의 약탈을 엄금하였다. 동년 5월 초, 주일귀는 대남부(府)에 입성하여 그곳에서 국호는 [[명나라|대명]](大明)으로 정하고 칭제건원하여 황제로 즉위하였다. 또한 만주족의 복장을 벗고 변발을 자른 후 한족의 복장과 두발을 회복하도록 했으나 6월 복건성에서 출발한 청군의 상륙을 저지하지 못하고 사로잡힌 주일귀는 포로가 되어 복건성에서 사형당했다. 동시에 청군은 대만에서 반란 진압을 명목으로 무자비한 학살을 벌였다.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선 주일귀의 [[묘호]]가 [[덕종]](德宗)이라고 하나 출전은 확인되지 않으며, 19세기 중반 명의 부흥을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킨 [[주광부]](朱光富)는 그의 후손이라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