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철 (문단 편집) == 역사 == 잘 깨지기 때문에 전근대 시대의 기술로 대포 포신을 주철로 만들게 되면 자폭하는 수류탄을 곁에 두고 운용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강철의 대량생산이 시작되는 산업 혁명 이전까지 대포 포신은 주철이 아닌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조선의 경우 승자총통을 만들 때 청동이 부족해 기존의 낡은 승자총통을 녹이고 절의 종까지 녹여 새 총통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금속이 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철 총통 제작을 시도하지 않은 것을 보면 이게 얼마나 위험한 지 알 수 있다. 명나라에선 [[홍이포]]를 주조하면서 속관은 주철로 겉관은 청동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구리로 만든 겉관이 식는 과정에서 수축하면서 주철 속관을 누르게 되고 덕분에 포압에 견디는 힘이 늘어나는 효과를 얻었다. 다만, 대항해 시대 영국의 경우 주철 대포를 양산, 실전 배치했다. 병사 몇명쯤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서 그랬다는 사람도 있는데, 대단히 짧은 생각이다. 항상 실전 상황에 있는 영국 해군 입장에서 신뢰성이 떨어지더라도 대포를 대량으로 도입하지 않으면 오히려 전투에서 더 많은 병사들이 죽을 수도 있다. 물론 안정성에 대해 생각을 안 한 거는 아니라서 이 주철 대포는 폭발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포신에 여러 개의 링을 끼웠다. 주철 대포의 도입을 통해 영국 해군은 대포의 대량 배치에 따른 예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스페인, 네덜란드와의 함대함 전투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파일:중국 창저우 철사자 2.jpg|width=260]]||[[파일:중국 창저우 철사자.jpg|width=640]]|| ||||서기 10세기 [[후주]] 시기에 세워진 높이 6m, 추정무게 44톤의 [[창저우]]의 주철 사자 조각상|| 유럽 지역은 16세기 이전 중세 시대까지도 주철 생산 기술이 없어 여전히 스펀지 철을 단조해 연철과 강철을 제조하였으며 주철 대포는 처음부터 선택지에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중국에선 [[오버 테크놀로지|기원전 5세기 전국시대에 무쇠(주철)가 발명되어]] 무기와 생활 용품 제조에 사용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