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체사상/역사 (문단 편집) == 굴절기(1982~1990년대 중반) == 1980년대는 김정일의 세습 구도 공고화, 동구권의 붕괴와 맞물려 주체사상의 굴절이 본격화된 시기였다. 1982년, 김일성의 칠순을 기념해서 열린 전국주체사상토론회에서 김정일은 <주체사상에 대하여>란 논문을 제출하였다. 주체사상을 창시, 철학적 원리, 사회역사적 원리, 지도적 원칙, 역사적 의의 등 5개 부분으로 나누어 논리적으로 정립한 이 논문에서 김정일은 인간 중심이라는 주체사상을 노골적으로 수령 중심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역사의 주체는 근로인민대중이지만, 근로인민대중은 착취사회에서 단결하지 못했고, 이들을 올바른 영도를 통해 혁명과 건설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수령이라는 것이었다. 1985년 김정일은 주체사상 총서 10권을 발매하였으며, 1986년 제출된 <주체사상교양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에서 혁명적 수령론을 노골화하였다. >수령은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요구와 이해관계를 종합, 분석하여 하나로 통일시키는 중심인 동시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창조적 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중심입니다. (...) 혁명적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라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변함없이 오직 자기 생각의 모체인 수령-당-대중과 생사운명을 같이해 나갑시다. >---- >김정일, <주체사상교양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1988년 김정일은 <혁명의 주체>란 단행본을 내놓아 자신의 논문을 해설하면서, 역사의 주체와 역사의 자주적 주체를 구분하였다. 이는 당연히 혁명은 혁명의 최고영도자이며 뇌수인 수령과 수령의 사상과 영도를 실현하는 당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의 일환으로, 수령, 당, 인민의 3위일체론으로 정립되었다. 수령이 사회정치적 생명을 부여하며, 수령에 대해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를 지켜 수령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내용 등도 여기에 담겨 있었다. 결론적으로 노동계급의 이익은 당이 대변하고, 당의 이익은 수령이 대변하니 수령을 잘 따르라는 소리인데 구구절절 적지 않아도 김정일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다들 잘 알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조선민족제일주의]]같은 하위담론들을 발전시켜가며 주체사상의 당위성을 보완했다. 물론 김정일이 단순 권력욕에 빠져서 이런 짓을 한 것은 아니었다. 소련에서는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시도했으며, 중국에서는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하고 있었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날로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 두 사회주의 대국의 변화는 북한 정권으로 하여금 현재 통치 노선을 좀 더 강하게 뒷받침할 이론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구호에 집착하게 되었다. >위대한 주체사상을 구현하고 있는 우리 당의 로선과 방침은 우리식대로 살아나가기 위한 강령적 지침이다. (..) 우리 당의 로선과 정책에 어긋나는 그 어떤 사상도 우리 내부에 침습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온 사회에 주체사상과 그 구현인 우리 당의 로선과 정책만이 차넘치게 하여야 한다. >---- >조선중앙방송,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사고하며 일해가자>(1991.9.2) 이 과정에서 김정일은 유물변증법, 생물학적 진화론을 비판하며 주체사상의 독창성을 더욱 강조하였다. 그리고 사상론을 강조하면서 물질적 결핍을 실드치고 사회주의는 사상을 틀어쥐어야 승리한다는 사상론을 내세웠다. 1992년 헌법개정을 통해서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언급은 최종적으로 삭제되었으며 '인간중심의 철학적 원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