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한러시아공사관 (문단 편집) == 여담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고종의 길.jpg|width=100%]]}}} || || {{{#000 '''고종의 길[* [[https://www.seouland.com/arti/culture/culture_general/3919.html|사진 출처 - 서울&.]]]'''}}} || 2017년 [[문화재청]]에서 [[덕수궁 선원전]] 터에 [[아관파천]] 당시 [[고종(대한제국)|고종]]이 걸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건 좀 논란이 있다.] '고종의 길'을 완공하여 일반에 개방했다. 이 길의 서쪽 끝 문으로 나가면(아래 사진에서 보는 사람 기준 직진 방향) 바로 러시아공사관 터가 나온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Mtoub1K2qo0)]}}} || || {{{#000 '''〈이런경향〉 유튜브 채널의 러시아공사관 탑 내부 영상'''}}} || 2018년 5월 10일 중구청은 옛 러시아공사관 탑 내부를 [[서울특별시청|서울시청]] 출입기자들에게 공개했다.[[https://newsis.com/view/?id=NISI20180510_0014069168|#]] * 대한제국기 근대 정동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역사문화축제 '[[정동야행]]' 행사 중 하나가 이곳에서 열렸다. 2018년 5월 11일 오후 7시에 옛 러시아공사관 터에 있는 정동공원에서 대한제국 당시 외교가에서 열었던 연회 '정동연회'를 재현했다.[[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03/2018050300261.html|#]]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wIdiOxMvwCA)]}}} || || {{{#000 '''안드레이 쿨릭 러시아 대사가 출연한 〈더 디플로맷(The Diplomat)〉'''}}} || [[아리랑TV]]에서 2020년 3월 2일에 방송한 프로그램 《더 디플로맷(The Diplomat)》에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가 직접 출연해 옛 러시아공사관 터에서 [[아관파천]]의 뒷 이야기와 [[고종(대한제국)|고종]]의 항일운동을 소개했다.[[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200228000812&cpv=1|#]]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아관파천 오해.pn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돈덕전 일본대포.png|width=100%]]}}} || ||<-2> {{{#000 '''아관파천 당시 촬영한 것으로 오해받는 사진들'''}}} || 윗 사진들이 '[[아관파천]] 당시에 러시아공사관에 있는 [[고종(대한제국)|고종]]을 [[대포]]를 끌고와 위협하는 [[일본 육군]]'의 모습으로 알려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기와 장소 둘 다 아니며 1907년([[광무]] 11년) [[덕수궁 돈덕전]]에서 찍은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관파천#s-4|이 항목]]을 참조.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wNL47EOM3D8)]}}} || || {{{#000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사바틴 전시 관련 영상'''}}} || [[문화재청]]에서는 2020년 10월 19일부터 같은해 11월 11일까지 러시아공사관을 설계한 [[건축가]] 사바틴을 주제로 한 특별전 〈1883 러시아 청년 사바틴, 조선에 오다(부제: 사바틴이 남긴 공간과 기억)〉을 개최했다. 전시는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했으며 현장 방문 관람은 20일부터 [[덕수궁 중명전]]에서 시행했다. 해당 특별전에서는 사바틴이 설계한 여러 건물의 다양한 자료들을 전시했는데, 거기에 러시아공사관 관련 자료들도 많았다. 도면, 사진, 문서 등등. [[이미지]]로 보고 싶으면 [[https://gallery.v.daum.net/p/premium/sabatin|이 곳]]을 참조. * 사바틴은 열심히 건축 공사에 힘썼는데 [[임금체불|정작 설계, 공사 대금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청나라]] [[톈진]] 주재 [[러시아 제국|러시아]] 영사 슈이스키에게 못받은 돈을 달라는 청원서를 여러 장 보냈다.[[https://gallery.v.daum.net/p/premium/sabatin|#]] * [[러시아 정교회]]가 [[한국]]에서 처음 정착한 곳이 러시아공사관이었다. [[정교회]] 신자들인 [[공사관]] 직원들을 위해 파견나온 것. 하지만 [[한국인]] 선교를 위해 접근성이 나쁜 공사관 내부보다 새로운 장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1903년(광무 6년) 대한제국 선교담당 주임 사제 흐리산프 솃콥스키가 [[한성부]] 서서 황화방 군기시계 소정동, 지금의 [[경향신문사]] 사옥 부지에 선교부 건물들과 임시 성당을 건립하였다. 이는 한국 정교회 역사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지금도 러시아 정교회는 이 위에 자신들의 성당을 세우기를 원하지만 현재로서는 이 공사관 터가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성당 건립에는 한계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s-2.1|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 문서의 2.1 단락]]을 참조. * 겨울이면 [[표범]]이 상습적으로 출몰하던 곳이었다. 독일인 통역사였던 앙투아네트 손탁[* [[카를 이바노비치 베베르|베베르]] 러시아 공사의 사돈. [[손탁호텔]]의 설립자로 유명하다.]과 미국인 의료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는 러시아공사관에 표범이 나타난 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https://m.hani.co.kr/arti/animalpeople/human_animal/1019516.html?_fr=gg#cb|#]]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