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한러시아공사관 (문단 편집) ==== 아관파천의 현장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아관파천 당시 고종과 순종.png|width=100%]]}}} || || {{{#000 '''아관파천 당시 고종(왼쪽), 순종(가운데),'''}}} [[카를 이바노비치 베베르|{{{#000 '''베베르 러시아 공사(오른쪽)'''}}}]] || 1896년([[건양]] 원년) 2월에 [[고종(대한제국)|고종]]이 [[순종(대한제국)|왕태자]]와 함께 [[경복궁]]을 떠나 이곳으로 피신한 [[아관파천]]의 현장이기도 하다.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살해당한 후 신변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미 [[춘생문 사건|1895년(고종 32년) 11월 28일에 미국 공사관으로 가려 했으나 실패한 적이 있었으며]], 이를 거울삼아 아관파천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했고 결국 성사시켰다. 이후 고종은 여기에 머물면서 [[김홍집]] 친일 내각을 무너뜨리고 [[박정양]] 친러 내각을 조직했으며 [[러시아 제국|러시아]]는 이를 기회로 [[조선]]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시켰다. 자세한 내용은 [[아관파천]] 문서 참조. 1년 여 뒤인 1897년(건양 2년)에 고종은 궁으로 돌아갔는데, 경복궁이 아닌 러시아 공사관 근처에 있는 [[덕수궁|경운궁(지금의 덕수궁)]]으로 갔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러시아공사관 고종침실.png|width=100%]]}}} || || {{{#000 '''러시아공사관에서 고종이 사용했던 침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