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죽림고회 (문단 편집) == 이규보의 칠현설 == 이규보의 〈칠현설〉에 의하면 오세재가 경주에서 돌아오지 않자 죽림칠현은 이규보에게 오세재 대신 7현으로 들어올 것을 권유했다. 그러자 이규보는 "7현이 무슨 조정의 관직이어서 빈 자리를 메울 수 있는 것입니까? 중국의 [[완적]]과 [[혜강]]이 죽은 후 그것을 계승한 자가 있다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라고 하여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든 후, 이어서 시로써 "7현 가운데 그 누가 [[왕융]]과 같은 사람인지 아직 모르겠다"고 읊어 좌중을 성나게 만들었다고 한다. ||<-3> 칠현설 - 이규보 - || || 先輩有以文名世者某某等七人, 自以爲一時豪俊, || 선배유이문명세자모모등칠인, 자이위일시호준, ||선배들 중에 세상에 문장으로 이름 난 모모 등 일곱 사람이, 스스로 한 때의 호걸이라 여겼는데,|| || 遂相與爲七賢, 蓋慕晉之七賢也. || 수상여위칠현, 개모진지칠현야. ||드디어 서로 어울려서 칠현이라 하니, 대개 진 나라의 칠현을 사모한 것이다. || || 每相會, 飮酒賦詩, 旁若無人, 世多譏之, 然後稍沮。 || 매상회, 음주부시, 방약무인, 세다기지, 연후초저. ||매번 서로 모여서,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며, 방약무인하였는데, 세상에서 빈정대는 사람이 많아지자, 기세가 조금 수그러졌다. || || 時予年方十九, 吳德全許爲忘年友, 每携詣其會.|| 시여년방십구, 오덕전허위망년우, 매휴예기회 ||그때 내 나이 열아홉이었는데, 오덕전[* 오세재]이 망년우로 삼아, 항상 그 모임에 데리고 갔었다. || || 其後德全遊東都, 予復詣其會, 李淸卿目予曰, 子之德全, 東遊不返, 子可補耶. || 기후덕전유동도, 여부예기회, 이청경목여왈, 자지덕전, 동유불반, 자가보야. ||그 뒤에 덕전이 동도에 갔을 때[* 동도는 당시 동경으로 불렸던 경주로, 오세재의 외가가 있었다. 오세재는 이곳으로 가서 말직을 지내다가 생활고로 죽었다. 경주로 놀러간 것이 아니다.], 내가 그 모임에 참석하였더니, 이청경[* 이담지]이 나를 보고 말하기를, 자네의 오덕전이, 동도에 가서 돌아오지 않으니, 자네가 그 보충이 되겠는가? || || 予立應曰. 七賢豈朝廷官爵, 而補其闕耶. 未聞嵇阮之後有承之者. 闔座皆大笑。|| 여입응왈, 칠현기조정관작, 이보기궐야. 미문혜원지후유승지자. 합좌개대소 ||하기에,내가 곧 대답하기를, "칠현이 조정의 벼슬도 아닌데 어찌 그 빈 자리를 보충합니까. 혜강과 완적 이후에 이를 이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혜강과 완적은 7현중에서 비교적 일찍 죽었다. 특히 혜강은 관직에 오르지 않고 사마씨 정권에 항거하다가 처형당했다.]하니, 모두들 크게 웃었다. || || 又使之賦詩, 占春人二字. 予立成口號曰. || 우사지부시 점춘인이자 여입성구호왈 ||또 나를 보고 시를 짓게 하면서, 춘(春)과 인(人) 두 자를 운자로 부르기에, 내가 금새 지어 읊었다 || || 榮參竹下會, 快倒甕中春, 未識七賢內, 誰爲鑽核人。 || 영참죽하회, 쾌도옹중춘. 미식칠현내, 수위찬핵인||참람되게 죽림회에 참석하여, 유쾌하게 독안의 봄을 마시네. 씨에 구멍을 뚫을 인물[* 이를 죽림칠현의 핵심이 될 인물이라고 오역한 글도 있다. 그것도 문학사 관련해서. 사실은 본문에도 나오지만 왕융의 고사이다. 왕융은 자기집 자두를 팔면서 그 씨를 가져다가 싹을 틔울까 싶어서 자두 씨에 모두 구멍을 뚫었다는 ~~쪼잔한~~ 일화가 유명할 정도로 죽림칠현의 이름에 먹칠을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죽림고회에 참석한 이들 보고, 지금은 나름대로 관직을 떠나서 유유자적한다고 하지만 뒤에 왕융처럼 행동할 인물이 없으란 보장이 있느냐고 돌직구를 던지는 장면이다.]이 칠현중에서 누구인지 모르겠구나 || || 一座頗有慍色, 卽傲然大醉而出. || 일좌파유온색, 즉오연대취이출. ||이에 앉아있던 사람들 모두가 불쾌해 하였으므로, 이내 대취한 상태로 거만하게 나왔다. || || 予少狂如此, 世人皆目以爲狂客也. || 여소광여차 세인개목이위광객야 ||젊어서 이처럼 미친 짓을 하였으므로, 세상사람들은 모두 나를 광인이라고 하였다. || 말하자면 죽림고회의 구성원들은 젊은 이규보의 문재(文才)를 높게 평가하여 (마침 이규보와 친하던 오세재의 빈 자리를 대신하여) 자신들의 모임에 들어오겠냐고 제안했는데, 이규보는 '칠현이 정원이 정해진 벼슬자리도 아닌데 한 자리 비었다고 보충한다는건 무슨 소리냐?' 고 비꼬는 것으로 대답했고, 여기까지는 듣는 사람들도 재치있는 대답이라고 웃어넘겼지만 이규보는 이에서 멈추지 않고 '여러분들 (진나라의) 죽림칠현 따라하는거 좋아하시는데, 이러다 왕융이 한 짓도 따라하는 사람 나오겠네?'라고 거듭 비웃어 다들 불쾌하게 만든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좋게 보면 이국의 유명인을 흉내내기 좋아하는 허세와 허영을 풍자한 것이지만 어쨌건 자신에게 호의를 보인 이들을 별 이유도 없이 심하게 조롱한 것이고, 후일 이규보 자신도 이런 행적을 약간은 민망하게 여겼는지 '젊은 시절에는 미친 짓을 하고 다녔다'고 기록한 것이다. 다르게 보면 젊은 시절 관운이 잘 풀리지 않던 이규보의 방황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또 이렇게 보면 후일 출세운이 트이고 난 이후 이규보의 행적은 남들 보고 혹시 위선자가 되지 않겠느냐고 조롱하던 젊은 시절이 무색할 정도로 논란의 여지가 많았음이 씁쓸한 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