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준가르 (문단 편집) === 기원 === 기원은 [[예니세이 강]] 유역에 거주하던 유목민 [[오이라트]]다. 주로 수렵과 목축을 하며 살았다. 12세기경에 칭기즈 칸에게 정복당하여 4만 호로 편성되었고 이후 몽골군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원나라|원대]]에도 색목인으로서 우대받았다. 그런데 [[몽골 제국]]내에서 [[오고타이]] 가문의 [[카이두]]와 대칸의 경계선에 진출했었기에 몽골 제국 시대에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으며 주로 대칸의 반대편에 서서 싸웠으며,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우고 북진하면서 몽골의 세력이 약해지자 몽골에 대항해서 싸웠다. 이렇게 몽골과 맞서 싸우면서 오이라트는 몽골고원 서쪽의 유목 민족들을 흡수하는데, 케레이트, 나이만, 메르키트를 위시해 [[칭기즈 칸]]의 몽골 통일 당시 가장 거세게 대항했던 부족들로 워낙 덩치가 큰지라 말이 오이라트지 실제로는 흡수된 부족 출신들이 원 오이라트계보다 훨씬 많아진다. 즉 이즈음에는 오이라트를 중심으로 서몽골의 유목 부족들이 뭉쳤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후 오이라트의 최대 부족 순위는 준가르와 토르구트부터 나이만, 케레이트 계열이 된다. 원 오이라트계 부족은 오히려 소수 부족으로 전락한다. [[에센 타이시]]의 시대에 전 몽골을 통일할 정도로 기세가 대단하였고 급기야는 [[토목의 변]]을 일으켜 명나라의 [[정통제]]를 생포하면서 위명을 떨쳤다. 하지만 에센이 암살당한후 오이라트는 혼란에 빠지고 약화되어 몽골 부족들의 공격을 받아 서쪽 자신들의 본거지로 후퇴하였다. 이후 몽골 최후의 [[명군]]인 [[알탄 칸]][* 알탄 칸은 다얀 칸의 손자이지만 몽골의 대칸은 아니다.알탄 칸은 몽골 6부중 튀메드부의 칸일 뿐이다. 하지만 여러차례 중국을 침입하고 1550년에는 북경을 포위 공격하는 경술의 변을 일으키는등 그 명성과 영향력이 몽골 전부족에 퍼졌다. 그래서 당시 몽골의 대칸이었던 다라이손 구덴 칸은 알탄 칸에게 게게엔 칸이라는 직위를 주어 타협할수 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다라이손 구덴 칸은 차하르로 근거지를 옮길 수밖에 없었으며, 대칸의 권력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의 등장으로 오이라트는 몽골고원을 결국 상실하고 몽골에 복속되었다. 1600년대 초반부터 오이라트는 재흥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시기에 1623년 몽골 할하부를 격파하여 완전한 독립에 다시 성공하였다. 그 직후 내분을 겪어 케레이트의 후예 토르구트부가 서쪽으로 이주해 [[카스피해]] 북부의 [[노가이 칸국]]를 멸망시키고 그곳을 중심으로 삼아 지금의 칼미크가 되었다. 남은 오이라트의 부족 중 칭기스 칸의 동생 주치 카사르의 후예를 자칭하던 호쇼트부는 티베트 내전에 개입한 후 이주해 떨어져 나가고 잔존 오이라트는 1640년 청의 성장으로 위협을 느낀 몽골과 화의한 후 준가르부를 중심으로 통합하여 최후의 [[유목 제국]]을 건설했다. 준가르의 군주 칭호는 갈단 때를 제외하면 한(Xān)이 아닌 '''홍 타이지'''(Xong Taiǰi)라고 전해진다. 그런데 홍 타이지는 청 제국의 [[숭덕제]]의 휘호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 숭덕제의 휘호에 관해서 논란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