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문화 (문단 편집) == 개요 == [[20세기]] 초반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하여 한중수교가 이뤄질 때까지 양국 간 교류가 약 90년간 단절되었기에 많은 한국인들은 중국의 현대 문화에 대해 잘 모른다.[* 더 멀리 보면 [[조선]]은 [[청나라]]를 매우 혐오했기 때문에 [[명나라]] 멸망 때부터 거의 단절 수준이 지속되어 왔다고도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거의 400년 동안 단절 상태이다.] 중국 문화는 수천 년 간 인접한 [[대한민국]], [[일본]], [[베트남]]에 [[한자]]를 포함해서 거대한 영향을 미쳐왔으나, 근현대에 들어서 '''[[태평천국의 난|이런]] [[중일전쟁|저런]] [[국공내전|정치적]] [[문화대혁명|대혼란]]이''' 발생하면서 그간 쌓여온 역사와 문화가 많이 파괴되었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로는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의 일환으로 전통문화 보존이 공식담론이 되어 [[공자]]와 [[맹자]] 등 옛 위인들이 재평가되고 [[취푸]]의 공묘가 복원되는 등 주요 유적지와 문화재는 복원되었지만, 경제개발 과정에서 배금주의가 팽배하여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베이징]]의 후통이 철거되고 상당수 유적지를 관광회사가 운영하여 고택들을 호텔로 개조하는 일도 벌어지곤 했다. 2000년대 이후 표현의 자유를 위한 중국 예술가들의 운동은 활발하다. 그래서 중국의 경제 성장과 함께 전통 문화의 재조명과 더불어 현대 문화에서도 상당히 발전하고 있다. 중국의 고전문화는 17세기부터 유럽에 [[시누아즈리]]라는 유행과 중국애호가(sinophile)라는 단어를 만들었을 정도고, 이에 기반한 여러 다양한 현대문화도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다. 중국이 소프트파워가 약하다는 주장이 있지만 다른 신흥 개도국과는 달리 엄청난 문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시 문화 대국에 등극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검열'''이 중국 문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엄격한 검열은 현재진행형이며 예술 발전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부터 제재를 받고 있다. 2010년대 초에 검열을 완화시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하였지만 2015년에 들어와서는 [[시진핑]] 1인 독재 체제를 굳히기 위해 다시 검열을 빡세게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비록 드라마와 영화, 게임에 있어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기는 했지만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중국/문화 검열]] 문서 참조. 사실 중국 문화의 영향력이 강했던 역사가 있는 나라들은 중국 문화도 자기들의 문화와 꽤 많이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현재도 이런 오해[* '중국어에도 존댓말의 영향이 강하다.', '중국도 수시로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낼 것이다.' 등등. 실제로 중국은 문어체에서는 존댓말이 거의 다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며 [[제사]]도 한국처럼 시시때때로, 또는 큰 스케일로 지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가끔 단촐하게만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들이 있는 편이지만 나라마다 자연환경과 조건이 다른 것만큼 문화가 좀 많이 다르다. 보편적으로도 거대한 영토에서 살아 온 사람들과 작은 영토에서 살아 온 사람들은 만들어 온 역사도 다른 경우가 많고 상당히 마인드의 차이가 나는 경우들이 많다. 대체로 전근대에 상대적으로 문물의 힘보다 인간의 힘에 비중을 두고 거대 제국을 건설한 민족들은 외향적 성향이 생각보다 강했기에 개척이나 모험 같은 도박적인 성향이 있는 활동들도 잘했다.[* 화교와 싱가포르 등으로 그 영향이 구체적으로 남아 있어 확인하기도 쉽고 영토가 불분명하던 시절에 간쑤성과 랴오닝성 등 일부 지역들은 초기에는 이민족들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들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중국 땅이 다 되어버렸다. 심지어 사나운 유목민들이 있던 지역들마저 유목민들의 극딜을 버텨가며 개척을 상당히 잘 했다.] 중국만 봐도 해로를 딱히 중시하지 않아서 바다로는 덜 나갔지만[* 물론 어디까지나 비교적 그랬다는 것이고 이미 중세부터 동남아시아 일대로 진출한 중국인들이 꽤 있다. 특히 해외의 화교가 가장 많이 사는 나라들이 동남아시아다.] 육로로는 이미 한나라 시절에 실크로드 개척 및 히말라야 너머의 인도랑 한반도까지 중국인들이 돌아다녔다. 후한서 등 여러 기록에도 [[원제(전한)|한나라 원제]]의 명령으로 서역 개척에 나섰던 서역 부도호 천탕(陳湯)이 기원전 36년 골칫거리였던 흉노를 대파하는 가운데 머리가 노랗고 코가 우뚝한 이상한 모습의 병사 1천여 명을 포로로 사로잡았다는 내용이 있다. 상대적으로 비교를 해도 개척에 사람들을 보내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던 [[한반도]] 국가([[고려]], [[조선]] 등)와 [[일본]]과는 다르게 중국은 개척에 그리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확실히 한국과는 상대적으로 자연환경의 차이도 있고 넓은 영토에서 온갖 인간들과 온갖 역사[* 그래서 그런지 온갖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에 대한 기록 내용의 다양성도 매우 풍부하다.]를 경험해서 그런지, 학벌에 대한 태도도 확실히 좀 한국과 다르기는 하다. [[학벌]] 항목 참조. 다만 엄연히 유교 문화권이고 [[과거 제도]]가 있던 나라라서 기본적인 학벌 인식이 일본보다는 한국과 비슷하고, 서구나 일본처럼 대학을 나오지 않고 잘 사는 것도 많이 추구되기보다는 거대한 나라의 크기 특성상 대학에서의 서열구조가 한국보다 복잡할 뿐이다. 한족 우월주의자들도 혈통적 민족 우월주의자들과 비교를 하자면 많이 다른 면모를 보이는데, 혈통보다는 "왜 너희는 한족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한족이 되려고 하지 않느냐?"라는 느낌이다. 그리고 통일, 통합 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역 문화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대체로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을 좋아하는 문화가 있다. 지역별로 문화적 차이가 생각보다 심하게 나서 같은 중국인끼리도 컬쳐쇼크를 받는 경우가 많다. 한 편으로 한국과 비슷한 면도 많으며 한국의 수십 년 전 모습을 답습한 경우도 있기에 이 점에 있어서 익숙함이 들 수도 있다. 사실 대중가요와 드라마, 영화를 포함한 중국의 대중문화도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경제 발전 및 도시화 등 사회 변화를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거친데다가 경제개발 과정에서 선도주자인 싱가포르와 대만, 일본, 홍콩, 한국의 사례들을 많이 참고했기 때문에 중국에서 사회문제로 지적받는 많은 것들이 한국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받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유래한 [[맹모삼천지교]], [[과거 제도]], [[사농공상]] 같은 모습의 기반이 되는 사상은 경제가 발전하자 여기서 중국의 영향이 좀 약한 일본[* 그래서 대기업-중소기업간 임금 격차와 직업간 격차가 적은 편이라 학력에 대한 욕구가 심할정도로 과열되지는 않은 편이다. 다만 동아시아 특유의 부모가 고생한다고 여기면 자식도 당연히 고생한다는 식의 관념이나, 노동권을 침해하는 부분은 있어서 저출산이 서구 최저 수준은 된다.]을 제외한 나라에서 먼저 사회적인 부담을 주었고, 후발주자인 중국이 답습하게 되었다. [[사교육]] 및 [[0교시]], [[야간자율학습]] 등으로 대표되는 교육열이 대표적이고, 아파트 문화, 야근, 음주문화, 저출산 등 인구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알리페이]], [[위챗페이]]로 대표되는 [[핀테크]]와, [[마천루]], [[지하철]], [[고속철도]], [[고속도로]] 같은 엄청나게 빠른 인프라 건설 속도처럼 중국이 한국보다 훨씬 앞서나가는 분야들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