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문화 (문단 편집) ==== 그리스도교 ==== 중국에는 최소 4,400만에서 1억 3천만 사이의 그리스도교인이 있다. 통계폭이 매우 큰건 [[중국 공산당]] 산하 어용 교회만을 공식 통계로 냈을 때는 2012년 공산당이 인정한 [[개신교]] 조직의 삼자애국운동(三自爱国运动)와 중국기독교협회(中國基督敎協會)는 약 2,000만, 중국[[천주교]]애국회(中国天主教爱国会) 600만이고, 2018년 중국 공식 통계상으론 약 4,400만이다. 그러나 중국의 종교 정책에 반발한 지하교회 교세가 2~3배에 달한다는 추정이 많고, 낮에는 공식교회, 밤에는 [[지하교회]]를 오가는 신자의 수도 상당하기에 현재 중국 그리스도인의 숫자는 추정치일 뿐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렵다.[[https://assets.publishing.service.gov.uk/government/uploads/system/uploads/attachment_data/file/848830/China_-_Christians_-_CPIN_-_v3.0__November_2019_.pdf|영국 정부 2019년 11월]] [[https://www.cfr.org/backgrounder/christianity-china|미국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통계를 보면 지하교회 포함 기독교 신자는 최대 1억명에서 1억 3천만명에 달하며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더군다나 복음주의 개신교는 [[허난성]] [[저장성]] [[안후이성]]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성장중이다. 특히나 2012년 China Family Panel Studies(CFPS)조사에 따르면 허난성은 개신교가 5.6% 가톨릭 0.5% 총 6% 이상의 인구가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답할 정도. 과거 20세기 초 까지 서양 선교사들의 사역은 대체로 실패했으며[* 한국과 달리 중국과 일본의 기독교 선교는 지배층과 엘리트층을 위주로 했으나 전통과 충돌하여 실패했고, 한국의 기독교는 차별받던 여성, 서얼, 서북인등의 자발적인 개종으로 성공했다. ] 대체로 1978년 개혁개방이후 허난성을 중심으로 복음주의 교회 증가세와 연결된다. 20세기 초중반 까지 선교사들의 교파는 가톨릭 성공회 감리회 장로회가 주도 했으나 현재 중국서 폭발적인 교인수 증가는 오순절 교회 계통의 복음주의 교회가 주도한다. 그래서 북중국의 경제력이 열악한 허난성이 기독교인 비율이 중국 평균(2.1%)의 세배인 6.1% 이다. 현재 중국 기독교는 허난성등 저소득층 사회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한 복음주의 교파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인 선교사들의 지원이 상당히 크다. 중국의 [[국가 무신론]]의 영향으로 중국 공산당 산하의 기독교 단체에 속하지 않으면 종교가 불법인데다가 공산당 산하의 합법 교회마저도 중국인 전용이라 외국 선교사들은 중국인 교회에 참가할수 없고, 적발시 강제 추방되기에 한국 목사들의 무슨무슨 협회 회장이니 임원이니 사장으로 파견되어 한국인 교회를 운영하는 척하면서 중국인 사역자를 키워내는 방식이다. 과거 중국의 기독교는 16세기부터 [[예수회]] [[수도자]]들의 전래로 [[가톨릭]]이 처음에 들어왔으나, 예수회에서 상층 엘리트를 상대로 포교하는 전략을 펴다 전례문제와 함께 교황청에서 조상제사를 금지하는 조치와 함께 쫓겨나고, [[청나라]] 중기부터 19세기 중반 [[아편전쟁]]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 열강들의 조약으로 포교의 자유는 인정 받았으나 실질적으로 지방에서는 금지되었으며, 여러차례의 서양 열강들의 개입으로 그나마 외국인 조차 지역과 항국 지역에 수만명의 기독교인 신자가 생겨났지만 1900년 의화단 폭동때 서양인과 외국인 중국인 기독교인들이 강간 고문 등 인간 살처분이 되면서 교세가 타격을 입었다. [[중화민국]] 시대에 들어 다시 교세를 회복하려고 했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극심하게 탄압받았다. [[덩샤오핑]] 시대부터는 어느 정도 탄압이 완화되어 공산당 통제하에 공인교회안에서의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다. 그러나 공인교회는 중국공산당에 충성을 맹세하고 통제에 순종을 해야하기 때문에 교회 조직부터 설교 내용까지 공산당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공산당 유물론과 배치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내용은 애초에 검열로 설교가 불가하다. 더군다나 종교를 술이나 담배 같은 해악으로 보기 때문에 미성년자는 합법 교회마저 같이 출석할 수 없다. 단순히 설교 뿐만 아니라 사전에 허가 받지 않은 설교, 강의, 모임은 불법이며, 코로나 사태로 봉쇄시에도 온라인 설교마저 불가능하다. 이는 시진핑 집권 후 2020년까지 점점 심해지는 추세였으나 그 이후 중국 정부에서 동성애에 대한 억압을 강화하면서 반동성애라는 공통의 가치를 가진 기독교에 대한 탄압은 반대급부로 [[이이제이|완화하고 있다]]. 사실상 [[불교]], [[도교]]와 같은 전통 종교보다 20세기 초반까지 서구 열강과 함께 침입한 앞잡이 시각으로 교육하는 경우가 많아서 공식교회는 공산당 어용 조직이라는 한계와 더불어 지하 교회 신도가 적게는 2~3배에서 5~6배까지 달한다는 추정이다. [[가톨릭]]의 경우, [[주교]] 서임은 [[교황]]의 정식 승인을 받고 나서야 이루어져야 하지만 [[중국공산당]]은 자기들이 자체적으로 주교를 뽑아 임명해놓고 주교라고 우긴다. 본디 주교 서임은 교리상 [[교황]]의 고유한 권한이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는 교회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렵다. 또한 [[사제]]들도 '중국천주교애국회(中国天主教爱国会)'라는 것을 만들어서 여기에 가입하는 걸 거부하는 사제들은 감옥에 가거나 가택 연금된다. 1957년에 정부 주도로 세워진 '중국천주교애국회'의 선언문을 보면 애국회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 [[바티칸]]은 미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세계를 위하여 일하며 [[사회주의]] 제도를 원수로 여긴다. 따라서 바티칸에서 오는 명령은 그것이 정치적인 것인지 종교적인 것인지 분명하게 구분해야 하며, 종교 형식으로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그런 명령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 애국은 천직이므로 (바티칸을 포함해) 어떤 사람이라도 우리나라를 반대하면 우리도 그를 반대할 것이다. > - 김원철, "애국회, 불가피한 역사적 산물인가?", 평화신문, 2008. 11. 30. [[바티칸]]에서는 [[중국공산당]]이 자체적으로 임명한 주교들을 정식 주교로 인정치 않고 있으며, 중국 정부와도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고 [[대만]]과 수교하고 있다. 최근에는 [[베트남]]처럼 공산당이 주교들을 추천하면 바티칸에서 임명하는 방식으로 중국 정부와 조율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합의가 된 것은 아니다. 물론 중국 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 관제 가톨릭교회에 귀의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교리에서 굉장히 제약이 많아서, 가톨릭인데도 [[교황]]을 언급할 수 없고, [[공산주의]] 사상과 배치되는 [[예수]]의 재림 역시 언급되지 않는다. 예수의 재림은 대표적인 일례일 뿐이고, 크고 작은 기독교 교리 중에 공산당의 입지에 불리하게 작용할 만한 내용들을 수시로 제한받는다. 이러한 공산당의 정책에 반발하여, [[교황]]의 수위권을 따르는 [[중국]]의 [[가톨릭]] 신자들은 중국천주교애국회 교회에는 나가지 않고 지하에서 자체적으로 종교활동이나 모임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하교회는 [[중국 정부]]의 탄압의 대상이며, 적발될 경우 바로 감옥행이다. [[개신교]]에 대해서도 국가 통제가 강하기는 마찬가지. 역시 삼자교회라는 관제교회 산하이다. 이것 역시 기독교 교리와 교회 운영에 꽤 많은 부분을 수시로 간섭당하는 절름발이 신세이다. 개신교에서도 관제교회 신자는 비교적 소수이며 대부분이 지하교회를 다니고, 이들 역시 탄압 대상이다. 역시 외국인 선교사들은 경고없이 추방되기에 한국인 목사들은 무슨 사장이나 협회장으로 명함을 파서 활동을 하고 공산당에서는 관제교회가 아닌곳에서 예배나 집회가 이뤄지면 불도저로 건물을 밀어버리는 등 가시적인 탄압이 이뤄지고 있다. 다만 2020년대 이후 동성애가 중국 공산당의 주적으로 지목되면서 지하교회에 대한 탄압은 역으로 줄어들고 있다.[* 중국 개신교인들은 한국 개신교 이상으로 동성애에 적대적이며 지하 교회 신자들의 경우 정부의 종교 탄압 아래에서도 [[호모포비아|동성애 반대 운동]]에 목숨을 걸고 임한다.] 지하교회 중 처소교회라 불리는 곳들은 [[예배]]나 [[미사]]를 몰래 드린다. [[중화인민공화국 인민경찰|경찰]]에 걸리면 당연히 체포이며,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10 상하이 엑스포]] 때 단속이 특히 극심하였다. [[정교회]]에 대해서는 아직 중국 정부 차원에서 분명하게 인정하는 조직이 없이 본당별로 암묵적 인정하는 식으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정교회 산하 자치교회인 중국 정교회의 특성을 고려해 [[중국 정부]]가 타 그리스도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외국인 [[선교사]]와 성직자의 활동을 금지하고, 성직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 설립이나 유학도 금지하고 있어 보이지 않는 철저한 내부 통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가공인종교에 들어가 있지 않은 종교라 새로이 [[예배]] 처소를 건립하는 등에 있어 애로사항이 많다. 지금은 신자 수가 거의 남지 않고 단지 중국 주재 [[러시아인]]들을 중심으로 사목하고 있다. 중국 정교회 재건을 위해 모스크바 총대주교는 중국 정부에 교회 등록을 촉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는 한편 세계 총대주교(콘스탄티노폴리스)는 1996년에 홍콩에 대만과 남아시아, 극동 지역을 관장하는 교구를 설립했다. [[http://journeytoorthodoxy.com/2018/03/chinese-orthodox-receive-state-approval-to-prepare-for-ministry-in-russian-seminaries/|최근 중러 협의를 통해 중국의 정교회 성소자(신학생)들이 러시아 정교회 신학교에서 유학 가는 것이 허용되어 중국에서의 장래 사목활동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홍콩]]/[[마카오]]에는 식민모국의 영향[* [[영국]]령이었던 홍콩에는 [[성공회]]를 비롯한 [[개신교]] / [[포르투갈]]령이었던 [[마카오]]에는 [[가톨릭]]]으로 [[기독교]]의 영향력이 중국 전체에서 볼 때 유별나게 강했다. 현재는 무종교 내진 무신론자와 기독교인이 절반씩을 나눠 갖는 모양새이다. 홍콩 그리스도인과 마카오 그리스도인의 역사는 [[포르투갈]] 정복자가 [[중국]] 남부 [[광둥성]]에 온 17세기 [[대항해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한국보다도 오래됐다. [[홍콩]]이나 [[마카오]] 교회는 한국과 달리 아파트에 달랑 [[십자가]] 세우고 天主敎堂이라고 쓴 게 전부라, 대형교회에 익숙한 [[한국인]]은 잘 못 알아본다. 땅이 좁아 오래된 교회가 아닌 바엔 대개 그렇게 아파트에 교회가 입주했다. 중국 본토의 공인교회는 [[교황]]을 언급하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할 수 없게 되어 있는 등 제약이 많아, 이게 싫은 사람들이 [[홍콩]]/[[마카오]]로 건너가기도 한다. 2014년 [[우산 혁명]]에서도 젊은 기독교인들이 한 축을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112|담당했다.]] 중국의 위인 중 기독교를 믿는 위인이 꽤 많다. 양안 공통의 국부 [[쑨원]]과 그의 친구인 [[쑹쯔원]] 일가 등이 대표적인 예이며, 대륙에서 쫓겨나기는 했지만 [[장제스]]도 그리스도인이고[* 이 사람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군의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성경]]의 구절을 읊으며 소감을 표현했다(...)] [[쑨원]]의 부인 [[쑹칭링]] 역시[* 이 분은 [[중국공산당]]의 요직에 있었다. 1981년 타계.] 그리스도인이다. 생각보다 기독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셈. [[중국어]]에는 礼拜 즉 예배에서 온 礼一, 礼二 등의 요일 표현도 있는데 몇몇 유럽권 언어처럼 [[예배]]를 드리는 일요일을 기준으로 요일을 나눈 것이다. 오늘날에도 [[홍콩]] 등 그리스도인이 많은 곳에서 구어로 쓰기도 한다. 중국 내에서는 [[기독교]]([[가톨릭]], [[개신교]] 포함)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는 상황을 두고 중국 정부가 고심 중이라고 한다. 특히 기독교는 [[마오쩌둥]] 사망 이후 [[종교의 자유]]가 제한적으로 보장되면서 매년 10%의 성장을 기록해왔다. 퍼듀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펜강 양(Fenggang Yang) 교수는 최근 영국 텔레그래프(The Telegraph)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곧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 인구가 많은 나라가 될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중국 내 종교: 공산주의 지배 아래 생존과 부흥’(Religion in China: Survival and Revival under Communist Rule)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양 교수는 2010년 퓨리서치센터의 연구 결과 약 5,800만 명을 넘었던 기독교 인구가 2025년에는 1억 6천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중국 내 개신교 인구가 미국을 앞지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 교수는 “가톨릭을 포함해서 중국 내 전체 기독교 인구는 2030년까지 약 2억 4,7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마오쩌둥은 종교를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완벽하게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집권한 1949년 당시, 마오쩌둥은 교회를 정부 아래 두고 기독교 선교사들을 추방했다. 중국 기독교인들은 문화혁명기인 1960년대와 마오쩌둥의 집권기인 1970년대 극심한 핍박에 직면하기도 했으나, 불과 같이 계속해서 성장해 나갔다. 중국이 이를 두고 고심하는 이유는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 주의를 따르는 제1당으로서 과학의 대중화를 통해 인민들이 출생, 노화, 질병, 죽음, 행운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종교의 영향력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려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힌 중국 국가종교사무국 국장 왕쭤안(Wang Zuoan)의 인터뷰에서 보듯 중국이 공식적으로 과학적인 무신론을 이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기독교가 공산당을 효과적으로 견제한 경우도 있었고, 중국 내 기독교인들은 속세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불교인과 달리 고학력자들의 사회적인 활동이 왕성한 탓에 공산당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기독교의 서구색 역시 중국에서 문제를 삼는 요소다.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는 서구 열강의 각축의 역사이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에도 냉전을 겪으면서 서방에 대한 의식이 기본적으로 부정적이다. 하여 중국에서 기독교는 언제나 '서양 종교'라는 딱지를 달고 다니며, 근현대사 등을 다룰 때에도 과학의 발전에 역행하는 꼰대세력, 제국주의의 앞잡이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하는 편이다. [[불교]] 역시 외래종교이지만 이미 충분히 중국화가 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인식도 옅은 편이고, 중국을 홍보하는 문화적 콘텐츠[* 예를 들어 [[소림사]] 등.]로 써먹을 수도 있기 때문에 대접이 좋은 편이다. 2010년대는 중국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의 혹한기라 할 수 있는데, [[시진핑]] 정권이 자국 내 중국공산당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해나가는 정책을 펴면서, 기독교 종파들에 대한 종교탄압 강도가 극심하였다. 미성년자는 종교시설에 출입할 수 없게 하였으며, 가톨릭과 개신교의 종교시설 철거나 교회 행사 방해, 또는 공산당 입맛에만 맞는 교리를 강요하는 등 각종 탄압의 정도가 극심하였다. 다만 2020년대 이후 중국 정부의 주요 타겟이 종교가 아닌 동성애로 옮겨 가면서 이 부분에서 같은 방향성을 지닌 기독교, 특히 한국 개신교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동성애를 극도로 혐오하는 개신교에 대한 탄압이 대폭 줄었다고 한다.[* 물론 탄압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중국 공산당의 종교에 대한 공식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