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중국국민당 (문단 편집) == [[중국공산당]]과의 관계 == 20세기 초중반만 해도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은 [[국공내전|서로 전쟁]]까지 했을 정도로 매우 험악한 관계였고, 장제스 집권기에는 서로 물어뜯지 못해 안달난, 말 그대로 [[견원지간]]이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대만 민주화 이후부턴 아예 대륙과 대만이 별개임을 주장하는 [[민주진보당]]이 등장하고 집권하기까지 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중국공산당은 대만의 국민당을 공식 정당으로 인정해주고 최대 정적이었던 [[장제스]]에 대해서도 '담대한 기질을 지닌 호걸' 정도로 꽤 고평가해주고 있다.[* 이는 그 동안 중국 공산당의 선전이나 많은 이들의 인식과는 달리 '''진짜로''' 장제스와 중국 국민당이 [[중일전쟁]]에 성실하게 임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착각하는 것이 '중일전쟁 당시 공산군은 열심히 싸우고 있었는데 국민당은 공산당의 뒤치기만 일삼았다.' 라는 것인데 실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위치를 바꿔야 맞는 말이다.(...)][* 이 때문에 2020년대를 기점으로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국민당에 대한 묘사는 [[대만]]에서 제작되는 드라마나 영화보다 오히려 [[중국]] 본토에서 제작되는 미디어물에서 훨씬 나은 편이다.(...) 몰론 [[대만]]도 80년대까지는 항일과 애국심을 부각시키는 매체물이 많이 제작되었지만 현재는 오히려 [[2.28 사건]]이 항상 언급되면서 식민통치했던 [[일본]]보다도 [[만악의 근원]]으로 묘사되는 편이 많다. 반면 [[중국]]에서는 공산당보다는 못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일본과 열심히 싸운 항일영웅이고 무엇보다 패션에서만큼은 오히려 공산당보다도 더 우월한 존재로 그려지기도 할 정도다. 게다가 영화 [[색계]]에서 국민당의 항일 투쟁이 대놓고 후려쳐지고 한심하게 묘사되자 중국에서 기분나쁘게 받아들이면서 어그로가 잔뜩 끌렸을 정도였다.] 또 국민당도 2005년 [[롄잔]] 주석의 중국 방문을 즈음하여 친중국 노선을 타면서 현재의 국-공 관계는 1920년대 중반 제1차 [[국공합작]] 시절에 버금갈 만큼 가까워졌다. 이는 중국 국민당은 공산당과 비록 원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어쨌든 대륙과의 통일이 언젠가는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므로, 아예 통일을 하지 말자는 민진당에 비하면 최소한의 대화의 여지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0년 3월 열린 중국국민당 전당대회에서 [[92공식]]에 대한 재검토를 주장한 [[장치천]] 입법위원이 주석에 당선되면서 공산당과 가까웠던 그간의 관계도 재정립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장치천이 [[하오룽빈]]을 누르고 주석에 선출되자 [[중국공산당]]은 15년만에 축전을 보내지 않았다. 양안 통일을 이뤄낼 파트너로 [[대만민중당]] [[커원저]]를 선택해서 그렇다는 분석도 있다. 2020년 9월 [[장치천]] 주석은 푸젠성 샤먼시에서 매년 개최되어온 해협포럼에 국민당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기로 결정하며 공산당과의 선을 한 번 더 그었다. 2020년 10월 6일 장치천 주석 주도 하에 [[민주진보당]]과 함께 대미 재수교 결의안 및 미국에 군사지원을 요청하는 초당적인 결의안을 입법원에서 통과시키자 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는 장치천 주석과 국민당을 한 번 더 디스했다.[[https://news.naver.com/mnews/article/079/0003415639?sid=104|#]] 그러나 장치천 주석이 물러나고 주리룬 주석이 임명된 후부터 다시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다. CCTV에서 대만정치에 관한 뉴스를 자주 방송하는데 민진당에는 부정적, 국민당에는 긍정적인 논조를 갖고 있다. 판다선물을 거부하던 민진당과 달리 국민당집권시절 판다 2마리를 받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