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국민당 (문단 편집) == 기타 == * 중화민국이 정식 국명으로 활동하는 몇 안 되는 단체 중 하나이다.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에는 우파 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 창당 당시 초대 당대표 명칭은 총리였으나, 쑨원 사후로 이 명칭을 폐지하고 총재로 전환하였으나 다시 [[랴오중카이]], [[후한민]] 등을 거쳐 장제스 사후 다시 총재 명칭을 폐지하고 주석으로 전환하였다. 해당 인물들이 국민당에 끼친 영향을 기리는 것과 동시에 변화해가는 시대환경을 나름대로 반영한 결과라고 봐야 할 듯하다. * 처음엔 [[쑨원]]이나 [[장제스]], [[쑹메이링]] 등 [[기독교]]인들이 핵심 인사로 활동한 정당이었고, 덕분인지 지금도 기독교인 지지세가 높은 편이다. [[리덩후이]]도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국민당에 들어왔다가 나중에 대만 독립 문제로 이적한 케이스.[* 처음에는 기존의 대만 독립론하고는 다른 '중화민국' 이라는 기존의 체제로 중화인민공화국과 더 이상 통일을 지향하지 말고 주권국가로 인정 받자는 화독론을 주장하였다가, 이후에는 더 나아가서 [[대만 독립운동|대독파]]로 전향하였고 죽을 때까지 대만 독립을 주장하였다.] [[마잉주]] 전 총통도 [[가톨릭]] 신자이다. 물론 지금은 대만에서 기독교인이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낮다보니(5% 미만), [[불교]], [[도교]]나 [[유교]], 전통신앙 등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무신론]]자들 중에서도 국민당 지지자는 많은 편이다. 사족으로 [[홍콩]]의 범람연맹 지지자들도 기독교인이 많은 편인데, 사실 홍콩의 독립운동 혹은 민주, 자치 확대운동은 대개 개신교 및 가톨릭 신자가 주동해왔다. 조슈아 웡 등의 [[우산 혁명]] 지도부는 전부 기독교인들이고 여기에 가톨릭 주교인 조셉 찬 주교도 은근히 동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사족으로 홍콩 기독교는 중국 대륙에 많은 신자를 보유한 지하교회와 [[파룬궁]]과도 연합하고 서로 도와준다. 당연히 홍콩 기독교인 중에 내륙여행 허가가 안나는 사람들도 있는데 선교사로 의심받거나 중국 민주화 운동 내지는 파룬궁 지원 의혹이 있을 경우다. 물론 맨 처음 중국이 개방했을 때 제일 먼저 달려간 것도 홍콩 기독교인들이었다. * 정치인의 막말로 선거를 말아먹은 사례가 있다. 일례로, 중국 국민당 당적의 전국 공무원 협회 이사장 리라이시(李來希)가 [[대만 여아 참수 사건]] 피해자의 두개골이 가오슝까지 굴러가라는 망언을 퍼부었다. 왜냐하면 단지 여아 참수 사건 피해자 어머니가 [[시대역량]]에 입당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비상식적 막말에 분노한 가오슝 시민들은 안 그래도 친중 이미지가 있는 중국 국민당을 더 싫어하게 되었다. 한궈위는 파면되고, 리라이시는 중국 국민당으로부터 2년의 당권 정지를 받았다.[[https://www.upmedia.mg/news_info.php?SerialNo=87262|#]] [[한궈위]] 역시 가오슝 시장 재임 시절 구설이 잦았다. * [[민주진보당]] 등 [[범록연맹]] 지지층에게는 '''중국당'''(中國黨)이라는 [[멸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당연히 이들이 말하는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다. '''[[중공]] 국민당'''(中共國民黨) 같은 멸칭도 쓰인다. * [[중화민국/국민정부|리즈 시절]]에는 티베트 혁명당[[https://en.wikipedia.org/wiki/Tibet_Improvement_Party|#]]과 베트남 국민당[[https://en.wikipedia.org/wiki/Vi%E1%BB%87t_Nam_Qu%E1%BB%91c_D%C3%A2n_%C4%90%E1%BA%A3ng|#]]의 형성에 모티브를 주었으나, [[티베트]]에 [[중국 인민해방군]]이 진주하면서 티베트 혁명당은 해체되었고, 베트남 국민당은 베트남 공산화와 함께 망명정당 신세다. 한국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는데,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한 최대 물주였다.[* [[중국 공산당]]도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해준 물주였기는 했지만, 2차 국공내전 이전까지는 공산당이 야당이었기 때문에 그 입지가 제한적이었다.] 단적인 예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해준 인물이 [[쑨원]]과 [[장제스]]였고, [[김구]], [[김원봉]], [[김규식]], [[이시영(정치인)|이시영]], [[안창호]]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당시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독립운동을 펼쳐나갔다. 다만 쑨원때는 국민당이 중국 전역을 제대로 통치를 하지 못하고 군벌들이 난립하던 때라서 체계적인 지원은 힘들었고, 장제스가 중국 전역에 대한 통제권을 어느정도 확보한 뒤에나 체계적인 지원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장제스가 자선사업가는 아니라 임시정부를 무작정 밀어준 것은 아니었고 이런저런 생색과 함께 이런 독립운동에 대한 지원을 무기삼아 해방 이후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막상 그 영향력을 행사할 때가 왔을 때에는 [[국공내전]]에서 패한 장제스가 대만으로 쫓겨나 버려 말 그대로 도움만 준 꼴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