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랑천 (문단 편집) == 역사 == 1970년대 직강화 공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현재의 중랑천은 본류가 아닌 지류였다. 본류는 당시 배봉산 바로 옆을 지나 [[용답동]]을 가로질러 지금의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바로 앞으로 곧장 들어가는, 한천[* 현재는 복개되어 [[한천로]]가 되었다.]이 본류였다. 때문에 현재는 장한평(또는 장안평)이라고 하면 중랑천 동쪽의 광활한 평지, 즉, 현재의 [[광진구]] 일대를 이르는 말이었다.[* [[건국대학교]] 캠퍼스 내에 있는 [[10.28 건국대 항쟁]] 비문에 보면 장안평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은 '[[장안동(서울)|장한평]]도 아니고 [[화양동]]에 있으면서 무슨 장안평?'이라고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그 일대를 장안평이라고 한 흔적이다.] 지금 군자동과 능동은 중랑천과 1mm도 닿지 않아 상상하기 어렵지만 군자동과 능동이 장안동 일대를 관할하던 시절도 있었다. 직강화 공사가 끝나고 [[동대문구]]와 [[성동구]] 간 경계가 조정되면서 [[장안동(서울)|장안동]]은 동대문구로 넘어갔지만 법정동 [[송정동(서울)|송정동]]은 여전히 중랑천 너머 [[용답동]]의 동남쪽을 예전 경계 그대로 관할하고 있으며 옛 행정구역대로 이름을 지은 [[서울군자초등학교]]는 장안동에, 지명을 따라 이름을 지은 서울장안초등학교는 [[군자동(광진구)|군자동]]에 있다. 2005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랑천은 [[안양천]]보다 나아도 더러운 물이었지만 생태보존, 정화사업 등이 이루어지면서 많이 정화되었다. 맑은 날에 다리를 걸어서 건너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바닥과 물고기가 잘 보인다. 강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일 정도다.[* 단속을 안 해서 버젓이 하는 거지 불법이다.] 한강 본류 뚝섬에 유원지(강수욕장?)가 있고 중랑천에 큰 다리가 [[중랑교]], [[중랑철교]] 뿐이던 1970년대 초에도 현재의 [[중랑구청]]이 위치한 부근의 중랑천 물은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탁하고, 물고기가 없을 정도로 오염이 심하였다. 그야말로 한창때의 [[시화호]] 수준으로 새카만 폐수 수준의 비주얼이었고, 여름철엔 악취로 근처에 가기조차 어려웠다. 여기서 바닥이 안보인다는 것은 단순히 흙탕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염물질로 수면이 완전히 가려져 있었음을 의미한다. 당시 중랑천의 오염 정도를 알고 싶다면, 정화조 뚜껑을 열어서 그 안의 내용물을 보면 된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신발 같은 걸 빠뜨리기라도 하는 날엔 다시 찾는 것을 포기해야 할 정도였다.[* 잘 상상이 안 된다면 [[부산광역시]]의 [[동천(부산)|동천]]을 참고할 것. 아직 동천 수계에는 하수분리가 잘 되지 않으며 심지어 하천 바닥에 오염물질이 켜켜히 쌓여 2020년대가 된 지금까지도 이렇다.] 이렇게 심각하게 오염이 되어 있었던 이유는 1950년대부터 [[강북구]] 수유동, 미아동, [[성북구]] 길음동, 돈암동, 석관동, 월곡동, 장위동, 정릉동, 종암동 [[동대문구]] 이문동, 회기동, 휘경동 에서 판자촌이 형성되면서 우이천, 정릉천에서 흘러간 생활폐수가 아무 처리 없이 그대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다. 70년대 중반 이후 판자촌과 공장이 철거되고, 80년대에 중랑하수처리장이 확장되어 강북 동부권 전역을 실질적으로 커버하게 되면서 차차 회복하여 현재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이 하천이 지나는 주변에는 주거지역, 도로, 공장 등이 지나고 있어서 이 일대에 서식하는 동식물은 숲속의 동식물들과는 다른 편. 물고기는 [[붕어]], [[잉어]] 등이 서식하며 [[청둥오리]]나 [[쇠백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식물은 자생식물은 찾아보기 힘들고 귀화식물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사실 조선시대부터 빨래터로 자주 쓰여서 하천 오염이 심각한 편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다니다 보면 [[낚시]]하는 사람들도 간혹 볼 수 있었다. 이 또한 2011년도부터 중랑천 전역을 낚시 금지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정화사업과 더불어 자전거 도로를 내면서 하안을 정비하고, 하천바닥에 퇴적된 모래와 쓰레기를 파내면서 큰 비가와도 범람하진 않게 되었다. 1998년 8월 8일, 1999년 8월 1일~2일, 2001년 7월 15일, 2006년 7월 16일, 2011년 7월 27일에 [[집중호우]]로 인해 중랑천의 수위가 상승되어서 범람 위기까지 간 적이 있었다. 물론 주택가까지 범람하는 케이스까지는 아니지만 양옆의 [[동부간선도로]]와 하천변 공원이 물에 잠겨 통행이 중지되어서 교통 정체를 빚기도 했다.[* 특히 강폭이 좁은 상류에서는 거의 연례행사 수준이었다.] 2013년부터 집중호우 횟수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바람에 이후론 볼 수 없는 광경이 되었다. 다만 2022년 장마 기간에는 범람 우려로 인해 [[동부간선도로]]를 두 번이나 폐쇄해야 했다. 한겨울에 꽁꽁 얼면 사람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올라가보려면 안전을 위해 두께가 충분한지 미리 확인해 보는 게 좋다.[* 제대로 두껍게 얼었을 때는 바위로 있는 힘껏 내려쳐도 끄떡없을 정도니 사람들이 많이 놀고 있는 지점에서는 크게 걱정할 것 없다.] 한편 중랑천에 쌓이는 [[모래]]는 그 질이 매우 고와서, 이 모래를 원료로 한 벽돌공장들이 크게 발달했었다. 특히 면목동과 성수동 일대에 벽돌공장들이 많이 생겨났다. 2000년대 이후에도 이 벽돌공장들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