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세 (문단 편집) ===== 복식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oegame&no=12442358|디시인사이드 게임 속 중세의 옷]] [[https://m.blog.naver.com/hanarin8/221135117160|동로마 제국 복식 1/2]][[https://m.blog.naver.com/hanarin8/221137164321|동로마 제국 복식 2/2]] [[https://m.blog.naver.com/hanarin8/221140784366|중세 초중기 서유럽 복식 1/2]][[https://m.blog.naver.com/hanarin8/221142121667|중세 초중기 서유럽 복식 2/2]] [[https://m.blog.naver.com/hanarin8/221143725341|중세 후기 서유럽 복식 1/2]][[https://m.blog.naver.com/hanarin8/221147103049|중세 후기 서유럽 복식 2/2]] 아래에 후술되어 있지만 흔히 중세 유럽을 모티브로 한다는 대다수의 판타지, 양판소, 로판등의 복식 묘사나 웹툰에서 표현된 이미지 등을 보면 근·현대적인 이미지에 가깝게 묘사되는데 실제 중세 유럽의 복식 문화와는 전혀 다른 근대 복식 문화다. 실제 중세 유럽의 복식 문화는 중세 초만 하더라도 고대 그리스·로마의 복식 문화와 게르만의 복식 문화가 융합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서로마 제국이 붕괴되어 가는 당시 유럽의 복식 문화는 이미 그리스·로마의 복식과 게르만족들의 복식이 융합되어 가고 있지만 이미 [[토가]]를 점차 착용하지 않는 비율이 높아지는 등 전반적으로 게르만식 복식문화의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였다. 특히 그리스도교의 전파와 함께 튜닉의 밑단이 무릎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어졌다. 이는 동로마 제국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서유럽과는 달리 동방의 영향을 받으면서 점차 고대 로마의 복식과는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고, 이러한 동로마의 복식 문화는 키예프 루시를 거쳐 동슬라브인들이 주축인 러시아 공국들로 전파되었고, 서유럽에도 일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동서 대분열을 거친 후 중세 중기가 되면서 서유럽과 동유럽의 복식 자체가 완전히 갈라지게 되었다. 이는 중세 중기로 접어들면서 확연해지기 시작했다. 서유럽의 경우 [[비단]]이 다시 수입과 함께 동로마를 통한 교류 등으로 남유럽에서 생산되기 시작해 의상이 화려해지기 시작했으며, 남성용 튜닉의 밑단이 짧아졌으며, 또한 중세 초까지 그나마 넓었던 바지인 브레가 현제의 사각 팬티 수준으로 짧아지고, 양말 격이었던 호스가 점차 길어져 팬티스타킹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쇼스로 변하게 된다. 동로마의 경우 이미 중세 초부터 아랍과 페르시아, 그리고 현재의 발칸 지역에 정착한 마자르족과 같은 중앙 아시아에서 온 유목민들과 접촉하면서 점차 복식에도 영향을 받기 시작해 10세기 중반에 궁정 의상에 [[호복]]을 입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https://blog.naver.com/ohs6888/221237285473|10세기 중반]] 이러한 경향은 증세 중기인 11세기에 들어서면서 더 심화되어 복식의 동방적 색체가 더 강해지게 되었다.[[https://blog.naver.com/ohs6888/221240609687|11세기 중반]] [[https://blog.naver.com/ohs6888/221355173392|11~12세기]], 이후 후기로 접어들면서 점차 [[오스만 투르크]]의 세력이 커지면서 멸망하기 전까지 투르크의 영향을 받은 복식들을 입었다. 황제들이 머리에 쓰고 다닌 모자 또한 몽골-투르크식 모자였다.[[https://blog.naver.com/ohs6888/221278291456|황혼기]] [[https://blog.naver.com/ohs6888/220870984920|동로마 제국 말기 모자들]] 이는 동로마와 지리적 및 종교적으로 가까운 동유럽권 국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헝가리와 불가리아의 경우 본래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한 민족들로 이들 또한 호복을 입었고, 유럽으로 이주했다. 헝가리의 경우 피지배 계급 내에서 전통 의상을 고수한 반면 지배층 내에서 서유럽과 동로마의 영향을 받으면서 전통 의상 대신 당시 튜닉 등으로 대표되는 유럽식 복식이나 그 영향을 받아 변형된 복식을 입기 시작했다.[[https://blog.naver.com/sv_1018/222012894826|출처]] 불가리아의 경우 정교회로 개종해 동로마의 문화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배층 내에서 전통적인 면이 강해 여전히 호복을 입었다. 하지만 14세기 중반 발칸 반도로 진출한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멸망하면서 불가리아의 복식은 투르크의 영향을 받았다. 세르비아를 비롯한 발칸 반도의 정교회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로 발칸 반도로 이주한 후 정교회로 개종한 후 동로마 제국의 복식 및 동쪽과 북쪽의 헝가리 등의 영향으로 [[https://en.wikipedia.org/wiki/Kaftan|카프탄]]을 받아들이는 등 영향을 받아 전통 복식을 바탕으로 가 15세기 초에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면서 튀르크 복식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http://badamba.info/english/en_index.html|14세기 중반 이전까지의 불가리아·세르비아 상류층 복식]] 러시아의 경우 세르비아와 불가리아처럼 정교회로 개종하면서 복식이 동로마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중동 및 중앙아시아와 인접한 지역이었기에 12세기부터 카프탄과 복식이 퍼지기 시작해 13세기 중반부터 보편적이기 시작했다. 이후 농민 및 농노들은 남성은 전통 슬라브식인 [[https://ru.wikipedia.org/wiki/%D0%9A%D0%BE%D1%81%D0%BE%D0%B2%D0%BE%D1%80%D0%BE%D1%82%D0%BA%D0%B0|루바슈카]], 여성들은 [[사라판]]을 입었고,귀족과 성직자들을 비롯한 중·상류층들은 전통 슬라브식 복식과 동로마로 부터 유래된 예복과 몽골-튀르크식 복식인 카프탄 등이 [[표트르 1세]]의 서구화 개혁 전까지는 혼재되었다. 한편 아일랜드의 경우 유럽 본토는 물론이고 옆의 브리튼 섬은 물론이고 한때 서유럽 각지에 건재하고 있던 다른 [[켈트|켈트족]]들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복식 문화를 발전시켰지만 정체되었다. 아일랜드의 복식은 남녀 공통으로 레인(leine)을 입었는데 여성들의 경우 보통 브리튼, 유럽 본토의 여성용 튜닉과 마찬가지로 밑단이 발목까지 내려온 것을 입었다. 남성용 레인은 짧을수록 사회에서 입고 있는 사람의 지위가 낮고, 반대로 길수록 고귀한 신분이라는 증거가 되기도 했다. 다만 신분이 낮거나 높으거나 공통점으로 바지를 입지 않았는데 이는 아일랜드에 거추하는 케트족들이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켈트족들과 차별되는 복식 문화였다. 이러한 풍습은 17세기 [[잉글랜드 연방]]의 지배기까지 이어졌다. 아울러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 지방의 전통복식인 [[킬트]]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주청돤다.[[https://irishwishes.com/do-irish-people-wear-kilts-irish-leine/|관련 링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