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소결렬 (문단 편집) == 갈등의 시초 == 중국이 소련에 실망하게 된 첫 번째 계기는 [[6.25 전쟁]]이었다. 스탈린은 원래부터 북한의 남침을 지원하는 것에 소극적이었으며[*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6.25 전쟁]]은 [[김일성]]의 무력을 통한 한반도 [[적화통일]] 옹고집에 [[소련]]이 간신히, 그것도 반신반의하며 겨우겨우 승인받고 일으킬 수 있었다. 거기다 중국의 경우 자국 코 앞에서 전쟁이 일어났는데 처음에는 북한이 끝까지 몰아붙이나 싶었더니 곧 전황이 뒤집혀 [[대한민국 국군]]과 [[미군]]이 중심으로 이루어진 [[유엔군사령부|UN군]]이 [[압록강]]까지 [[광속]]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고 [[충격과 공포]]를 얻어먹은 반면 [[소련]]은 머나먼 극동의 변경 끝자락에 붙어 있는 [[한반도]]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즉, 군대 [[정훈교육]] 시간에 배우는 한국 전쟁은 "김일성과 스탈린이 사주해서 일으킨 전쟁이다."라는 내용은 반만 맞는 내용이다. 스탈린은 적극적으로 전쟁을 사주한 것이 아니라 김일성의 고집에 마지 못해 승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련도 한국 전쟁의 책임이 없는것은 아니다. 사실 소련도 2차대전을 승리하긴 했지만 상처뿐인 승리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터라,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한군이 유엔군의 반격으로 패망 직전에 이르자 중국측에 참전을 종용하면서도 자신들은 끝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소련의 지원은 겨우 [[공군]]뿐이었다. 그것도 [[평양]] 이북의 한반도 북부지역에만 공습하는 미군을 저지하기 위해 한정적으로 출격했으며 그 이남에서 제공권 없이 싸우는 중국군은 큰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한반도에 신경쓰느라 양안통일이 물건너간 것은 덤이다. 이 때문에 중국 지도부는 한국전쟁 지원에 소극적인 소련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중국은 미군에 맞서기 위해 소련의 [[MiG-15]]와 같은 고가무기나 장비[* 그렇다고 소련이 고가 무기를 제대로 판 것도 아니다. 6.25 때 UN군은 2차대전 때 사용하던 구형 [[M4 셔먼]] 전차와 [[M26 퍼싱]] 전차, 냉전 후 등장한 최신형의 [[M46 패튼]] 전차와 초기형 [[센추리온 전차]]를 주로 사용했는데 당시 소련에는 M4나 M26 같은 구형전차는 물론이고 M46이나 초기형 센추리온 같은 UN군의 신형 전차마저도 압도할 정도의 성능을 가진 [[T-54]]나 [[IS-3]], [[IS-4]] 같은 강력한 중전차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전차들을 전혀 판매하지 않았기 때문에 6.25 때 공산측 전차는 [[T-34-76|T-34]]나 [[IS-2]] 같은 2차대전 시기 전차들만 등장했다. 전차는 고사하고 소화기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를 대량으로 구입해서 참전했지만 소련은 우방국의 우대 가격이라고 중국 측에 사기를 치고는 [[제3세계]] 국가에 제공하는 원조 가격보다도 [[바가지요금|훨씬 비싸게 팔아먹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중국 지도부는 격노했지만 이때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지는 않았다. 소련도 이에 대해서 나름의 입장이 있었다. 소련 측은 2차 대전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나라였고 전후 복구가 한창이라 재원이 부족했으며 사실 그런 어려운 사정에 중공 정부 창립 초기에 중국에 해준 원조(2억달러 유무상 원조)도 적지 않았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소련 전체 외환보유고의 25%~30% 를 중공 지원에 할당했다고 한다.] 소련도 이렇게 어려운 형편이었고 더욱이 자국의 최신형 무기들의 라이센스까지도 허가해 주는 등 사회주의 혈맹국 중국에도 할 만큼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무기 만큼은 제 값 받고 팔아야 한다는 것이 소련의 입장이었다. 특히 중국측이 뒷통수 쳤다고 본 [[제3세계]]의 무기거래는 미국과 양다리를 걸치는 [[제3세계]](특히 인도)에 정치적 고려가 들어가 파격적인 할인을 해 줘야 했지만 무기-기술도입원이 소련 하나밖에 없는 중국에는 정치논리 대신 경제논리가 들어가니 딱히 뒤통수 친게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결과적으로 양측의 결렬은 지극히 경제적인 이유가 발단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