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앙대학교/역사 (문단 편집) ===== 대한민국 최초의 여학사 배출 ===== 해방 후 짧은 기간에 중앙여전, 중앙여대를 거쳐 남녀공학으로 급속히 발전한 중앙대학은 1950년 5월 18일 감격적인 제1회 학사학위 수여식을 거행하였다. 강당에서 거행된 학사학위 수여식에서 문학사 30명, 상학사 8명, 경제학사 11명의 총 49명이라는 중앙대학이 배출한 최초의 학사가 탄생하였다. 학사학위 제1호는 문학사 안선준이었다. 이 49명의 학사들은 중앙여자대학에 입학한 학생들로서 모두 여학사이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여자대학의 학사학위 수여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특기할 것은 이 학위 수여식이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대학 학사학위 수여식이었다는 점이다. 이화여자대학도 같은 해에 제1회 학사학위 수여식을 가졌으나, 중앙대학보다 약 2주 늦은 5월 31일이었고, 숙명여자대학은 중앙대학보다 2년이나 늦은 1952년 3월 31일에 제1회 학사학위 수여식을 거행하였다. 이와 같이 여러 모로 뜻 깊은 학위 수여식에서 임영신 학장은 간곡한 훈사를 하였다. 중앙보육학교를 인수한 후 중앙대학의 제1회 학위 수여식을 갖기까지, 모든 간난을 이겨 가며 참된 고등교육기관의 설립을 위해 일해 온 임영신 학장에게, 이 학위 수여식은 가장 소중한 노력의 결실이었다. 이 감격스런 학위 수여식에서 "의에 죽고 참에 살자" 는 모교의 교훈을 강조하는 임 학장의 훈사에는 감격, 열의, 비전이 스며 있었다. 훈사 요지는 다음과 같다. >내가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학교를 경영하기 시작한 것은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한 것 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이 우리 백의민족에게 아름답고 기름지게 지어 주신 삼천리 금수강산 우리 조국을 일제로부터 찾아야 했고, 그래서 교육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과연 하느님은 우리를 도와 조국을 되찾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조국을 재건해야 할 때입니다. >남존여비의 봉건제도에 얽매이고, 일제에 얽매여 이중으로 압박을 받아온 우리 한국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조국의 해방과 함께 우리 여성들도 그와 같은 압박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남성과 동등한 입장에서 공학을 하게 되었고 조국 재건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조국 재건을 위한 남녀 대학 교육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해방이 되자마자 중앙여자전문학교를 설립하고, 다시 이를 중앙여자대학으로 승격시켜 설립하였습니다. 그리하여 4년간 "의에 죽고 참에 살자"는 교훈을 내걸고 여러분에게 교육을 해 왔습니다. >여러분은 고등교육을 받은 한국 여성들의 지도자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가정에서, 직장에서, 국가 나아가서는 국제 사회 생활에서 진리의 사도, 정의의 용사가 되어 의롭게 죽을 각오로 참답게 살아 우리 겨레와 온 인류를 위하여 환난의 역사를 환락의 역사로 개혁하는 역군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조국 재건과 세계 평화를 위하여 부과된 여러분의 시대적 사명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모교의 정신인 "의에 죽고 참에 살자” 라는 교훈을, 또 우리가 생명과 같이 아끼는 중앙을 온 세계에 영원히 빛내 주시기 바랍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