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앙대학교/역사 (문단 편집) ===== 부산에서의 임시개교 ===== [[파일:external/7f606c869387b12ea0ff134607434a37c84d59251c927ad05f8b29f77d04f55c.jpg]] '''1951년, 부산송도교사 앞에서 임영신 박사, 교직원''' 1951년 4월 중앙대학은 부산에 피난 중이던 김태오 부학장, 이여진 교무과장, 한태수(韓太壽) 학생과장, 임건희 서무과장과 그 밖의 교직원들이 협의하여, 부산 지방법원 소년부 지원 근처에 중앙대학 임시사무소를 설치하였다. 임시사무소를 설치한 것은 부산에 피난 중인 정부 각 기관의 고문 또는 직원, 미군 기관의 통역 등으로 일하고 있는 교직원과 전시 연합대학에서 수강 중인 재학생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연락을 유지함으로써 중앙대학이 다시 개교할 때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이었다. 임시사무소는 우선 재학생들의 등록을 받아 학생들의 실태를 파악하였다. 그 후 전선이 대체로 고정되면서 부산에 피난 중이던 서울의 각 대학은 임시수도 부산에서 각기 개강을 준비하였다. 중앙대학 임시사무소도 개강을 위한 준비를 서들렀으나, 전시하의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 때문에 애로에 봉착하고 있었다. 때마침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5월 12일 재미 재단의 업무 관계로 도미하였다가 미국에서 활약 중이던 임영신 학장이 귀국하였다. 임 학장이 귀국하자 개강을 위한 준비는 급속히 진전되었다. 그는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이 지상 과업인 전시에서는 전력의 증강을 위해서라도 더욱 철저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부산에서 임시 개교를 위한 조치를 세웠다. 우선 부산 송도(松島)에 있는 부산시 소유 송도 해수욕장 건물을 빌어 임시 교사로 사용하기로 한 임시 본부는, 건평 약 140평 정도되는 건물을 약간 개조하여 교무실/교수실/서무실 각 1개와 강의실 3개를 마련하고 9월에 개강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