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앙대학교/역사 (문단 편집) ===== 총동창회 창립 ===== 부산본교와 이리분교 및 서울분교가 각기 앞뒤를 달리하며 개강이 되자 학사 행정도 차츰 본궤도에 오르게 되어, 그 동안 전시의 혼란속에서 중단되었던 졸업식이 거행되었다. 1951년 9월 9일자로 『동아일보』에 중앙대학 졸업반 학생들은 부산이나 사무소에 등록해야 한다는 광고를 낸 지 20일 뒤인 9월 29일, 제2회(1950년도) 학사학위 수여식을 피난지인 임시수도 부산시 부용동(芙蓉洞)에 있는 항서교회(港西敎會)에서 거행하였다. 이 학위 수여식은 원래 그 해 3월에 거행되어야 할 것이었으나 휴교 중이었으므로 자연 연기되었던 것이다. 중앙대학은 이 학위 수여식에서 문학사 방학희(方鶴姬)를 비롯하여 법문학부 36명, 경상학부 16명으로 총 52명의 졸업생에게 학사학위를 수여하였다. 이번에도 제 1회 학사학위 수여식과 마찬가지로 여자 졸업생만이 학위를 받았는데, 이것이 여자대학으로서는 마지막 학위 수여식이 된 것이다. [[파일:external/af03efe70758c70d3616ac89493c881d37ebcdd7f820fd5221e99f667e84cf03.jpg]] '''연도미상, 남녀공학 1기로 입학한 학생들 단체사진''' 1952년 4월 3일에는 제3회 학위 수여식을 역시 항서교회에서 거행하였다. 이 학사학위 수여식에서 중앙대학은 문학사 양호연(梁昊淵)(학사학위 번호는 102호이나, 남자 졸업생으로서는 제1호가 됨)을 포함해 125명의 남녀 졸업생에게 학사학위를 수여하였다. 제3회 졸업생 중 남자 졸업생은 97명, 여자가 28명이어서 남녀공학이라 하지만 남자가 전체의 78%를 차지한 것으로 보아 남학생 중심의 대학이 된 느낌을 주었다. 중앙대학의 남자 졸업생으로서는 제1회 학사학위 수여식이 되었으며, 남녀공학으로서도 첫 번째 학위 수여식이 되었다. 전시하의 졸업식이라 스스로 누르기 어려운 감개가 모든 참석자의 가슴을 메웠으며 서로의 유대감이라 할까 동창 사이의 우정도 한결 더하였다. 그들은 이 학위 수여식을 마치고 부산시 광복동에 있는 음식점에 모여 처음으로 중앙대학 동문회를 조직하였는데, 초대 회장에는 정치학과 제3회 졸업생 신철순이 선출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