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앙대학교/역사 (문단 편집) ==== 제2절 독지가들의 기부 ==== 한국전쟁으로 국내 사회질서의 교란은 물론, 일시적이나마 모든 산업도 중단되고 말았는데 중앙문화학원 산하의 모든 기업도 결코 예외일 수 없었다. 더욱이 재미재단의 자금도 입수할 수 없게 되어 중앙문화학원은 경제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재정의 궁핍은 결국 학교 발전을 저해하는 것으로 중앙문화학원은 재정 확보를 위해 고심하며 혼신의 노력을 쏟던 중, 임영신 총장이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에 있는 215핵타르의 금/은/텅스텐 광산을 중앙문화학원에 쾌히 기증한 것을 계기로 재단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기 시작하였다. 1954년 1월 20일에는 고주석 이사가 충북 괴산군 청천면/청원면/미원면에 걸쳐 있는 100만평의 석탄광산을 중앙문화학원에 기부하였다. 고 이사는 1952년에서 1954년까지 재단이사로서 중앙대학교 발전에 공헌하였을 뿐 아니라, 약학대학장으로 취임하여 초창기 약대의 기틀을 잡아준 분으로 중앙대학교로서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B%B4%85%EC%8A%A4%ED%8A%B8_%28%EC%9E%91%EC%9D%80%EC%82%AC%EC%A7%84%29.jpg]] '''봅스트 이사장(Elmer H. Bobst)''' 1955년 12월 2일에는 미국 워너 램버트(Warnar Lambert) 제약회사 이사장 봅스트(Elmer H. Bobst)[* 생애에 걸쳐 총 6개의 교육기관에 기부를 하였는데, Columbia University,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 Franklin and Marshall College, The Elmer Holmes Bobst Institute of Clinical Research at Hahnemann Medical College and Hospital in Philadelphia, New York University 그리고 우리나라의 중앙대이다.]가 루이스 파이퍼 부인의 유지를 받들어 약학대학의 시설 확충에 사용하도록 10만 달러의 거액을 기증하였다. 한미재단을 통해서 기증된 이 돈은 당시의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한미재단을 대표하여 중앙대학교에 전달하였다. 본교는 파이퍼 여사의 유지를 받들고 또 이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기증받은 돈으로 파이퍼 홀을 신축하고 주로 약학대학에서 사용하도록 조처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