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앙대학교/역사 (문단 편집) ===== 중앙도서관의 신축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C%A4%91%EC%95%99%EB%8C%80%ED%95%99%EA%B5%90_1959%EB%85%84%2C_%EC%A4%91%EC%95%99%EB%8F%84%EC%84%9C%EA%B4%80_%EA%B1%B4%EB%A6%BD.jpg]] '''1959년, 중앙도서관 낙성식''' 중앙대학교 도서관은 초기에 단독 건물을 갖지 못하고 1949년 3월 전 이사장 댁인 목조 2층 건물(흑석동 173의 9호)에서 개관하였다. 당시 1층은 사무실과 도서실 및 신문, 잡지 등 정기간행물의 열람실을 두었고, 2층은 일반 서적의 열람실로 사용하였으며, 장서는 5만여 권이었으나 대부분 일본 서적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소유 장서는 거의 분실되었고, 유엔군으로부터 교사마저 인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도서관을 강의실로 개조하는 불운을 겪었다. 유엔군으로부터 교사를 인수한 뒤에는 본연의 도서관으로 환원하게 되었으나 100여 석의 열람실로는 너무도 비좁았다. 때마침 파이퍼 홀이 신축되어 이 곳으로 약학대학이 이전하자 1956년 5월 종래 약학대학이 사용하던 희락관으로 이전하였으나, 이 건물 역시 도서관으로 사용하기에는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희락관으로 이전한 뒤 많은 도서를 기증 받고 신간도 구비하여 좋은 장서를 비치하게 되자, 비록 비좁은 도서관이지만 합리적인 운영을 위해서 도서관의 조직을 재정비하여 관장 밑에 도서과와 열람과의 2개 과를 두고 관내 업무를 분할/관장하도록 하였다. 1957년 9월 1일에는 일부를 도서관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철근 콘크리트 2층 건물(총건평 1,000평)을 완공하였으나, 학교의 사정에 의해 2층은 합동강의실로, 1층은 영신여자중학교의 임시교사로 사용하게 되었다. 1958년 10월 25일 도서관 신축공사가 기공되어 약 1년 후인 1959년 10월 23일에 지하 1층, 지상 8층의 거대한 도서관을 건립하였다. 신축된 도서관은 총 건평이 4,700평이었으며 3억 환의 공사비가 소요되었다. 도서관의 지하실에는 인쇄실/소독실을, 1층에는 전시 및 잡지열람실과 관장실/서적정리실/식당/숙직실을, 2층에는 열람실/목록실/서고를, 3층에는 강의실과 교수연구실을 두었다. 67개의 연구실은 전임교수에게 고루 배정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