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일전쟁/전개 (문단 편집) === [[루거우차오 사건]]과 [[화북전역]]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루거우차오 사건)]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화북전역)] [[1937년]] [[7월 7일]], [[중화민국 국민정부|중국]]과 [[지둥방공자치정부]]의 국경인 [[베이징시|베이핑]] 서쪽 영정하의 루거우차오 다리에서 어느 병사가 잠시 사라졌다 돌아왔다는 것을 시작으로[* 일설에 따르면 볼일을 보러 갔다가 늦었다고 한다.] 중일 양국 간에 마찰이 발생했다. [[루거우차오 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군사적 공명심 때문에 무모한 도발을 일삼던 일본군의 분위기에 편승한 연대장 '''[[무타구치 렌야]]'''가 사건을 키우고 일본의 군부와 내각이 사태에 기름을 부으면서 겨우 단 한 병사의 실종은 순식간에 중일 양국의 운명을 건 [[전면전]]으로 확대되게 된다.--화장실 갔다 와보니 전쟁 발발...-- 7월 11일, 중일 양국은 정전협정을 체결하였으나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은 오상회의를 개최, 대규모 병력을 중국으로 증파했고 일본군은 7월 25일 [[베이핑-톈진 전투|베이핑과 톈진을 공격, 7월 30일에 점령했다.]] 국민혁명군은 [[탕언보]]와 [[푸쭤이]]가 지휘하는 7집단군을 중심으로 반격했으나 패퇴했고 일본군은 10월까지 바오딩, 스좌장 등 화북의 주요 거점을 잇달아 점령하고 9월에는 [[옌시산]]의 산서성을 공격하여 점령함으로 화베이 지역을 모조리 장악했다. 7월 17일, 국민정부는 [[루산성명]]을 발표하여 일제에게 전 민족의 운명을 걸고 저항할 것임을 선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