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일전쟁/전개 (문단 편집) === [[난징 전투]]와 중일 교섭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난징 전투)]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Battle_of_Nanking_1937.jpg|width=100%]]}}}|| || [[1937년]], 난징 전투의 경로를 나타내는 지도 || > "모두가 반대하니 당신과 나, 둘중 하나가 난징을 지켜야하오." > "위원장님을 어찌 이곳에 남게 하겠습니까?" >---- >난징에서의 군사위원회 회의 도중 탕성즈와 장제스의 대화[* 출처: 용의 유전자(제국을 향한 피의 역사가 깨어난다)] 상하이 함락 이후 장제스는 난징 방어를 위해 패잔병들을 조직하여 방어선을 꾸렸으나 무기, 장교진, 훈련도의 부족으로 인하여 방어선은 무너졌으며 난징 함락의 위기가 닥쳐왔다. 중국 정부는 난징을 사수할 능력도, 전략적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결국 난징 포기를 결정, 수도를 충칭으로 옮기고 주요 정부기관과 주력부대들을 우한으로 철수시켰다. 장제스는 일제가 제시했던 기존의 협상안에 대해서 중국의 화베이에서의 명목상 주권을 인정하는 형태의 타협을 시도했으나 기고만장해진 고노에 내각은 이를 무시하고 패자 주제에 건방지다, 중국이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 운운하며 타협을 걷어찼다. 모두가 난징을 포기한 가운데 후난 군벌 [[탕성즈]]가 난징 사수를 주장하며 난징의 방어를 지휘했으나 결국 일본군의 맹공에 허망하게 무너져내리고 난징은 함락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