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화민국/군벌 (문단 편집) === 국부천대 이후 === [[중일전쟁]]에서 살아남은 군벌들은 대부분 중화민국 국군 장성 계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공내전]]이 벌어지자 장제스의 명령을 받고 [[중국공산당|공산당]]의 [[홍군]]과 싸웠다. 중일전쟁 중에서 장제스와 사이가 벌어진 군벌들은 공산당과의 전투에 소극적으로 임하다가 대세가 기울자 투항하기도 했다. 장제스를 따라 대만으로 가든, 공산당에 투항하든 이들은 명예직만 얻고 철저히 실권에서 배제되었다. 상당수의 군벌들은 대륙의 지배자가 된 공산당에 투항하였다. 탕성즈, 루한 등은 투항을 넘어 아예 기의를 일으켜서 자신의 영지를 통째로 공산당에 바치기도 했는데 윈난, 구이저우, 후난 등이 이렇게 공산당이 들어오기도 전에 항복해버렸다. 이런 군벌들은 공산당의 여러 고위직들과 학연, 지연 및 국공합작 시절의 인연으로 친분을 맺은 경우들이 많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탕성즈는 천이 및 펑더화이와 큰 친분관계가 있었고, 푸쭤이는 딸이 공산당원이었다.] 투항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자발적 투항이 아니라 공산군과의 전투에서 포로가 된 경우 전범으로 기소되어 10년 정도 감옥살이를 하긴 했지만 풀려나서도 공산당은 민심 수습을 위해 [[정협]] 감투 등으로 이들을 회유했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에서 봉건영주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문혁]] 시절 [[홍위병]]의 난동으로 고초를 겪었지만 [[펑더화이]]나 [[류사오치]]같은 중화인민공화국 개국공신들조차 홍위병들에게 [[조리돌림]]당하고 숙청당하던 시기임을 고려할 때 중공의 군벌에 대한 대우는 비교적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영지 내에서 공산당을 크게 탄압하거나 처형한 군벌들은 공산당에 투항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기반을 잃고 장제스를 따라 대만으로 도피했다. 대만에서 자신의 기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대만으로 도피한 군벌들은 대륙에 있을 때처럼 장제스에 반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만은 오랫동안 일본의 식민지였다가 중일전쟁이 끝난 직후 국민정부가 통치하였기 때문에 군벌들이 따로 대만에 영향력을 끼칠 시간은 사실상 없었다. 장제스에 잘 보인 군벌은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이들은 [[총통부]] 고문 따위의 허울 좋은 감투만 얻고 장제스의 감시 속에서 이런저런 통제를 받았으며, 대우도 박하여 몇몇은 생계 걱정을 할 정도였다. 한때 산서성을 수십년간 다스려왔던 산서왕 옌시산도 말년에 대만으로 도피한 이후엔 자동차 기름 넣을 형편도 못 되었을 정도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