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화민국/역사/대만 (문단 편집) ==== [[마잉주]] 시기 ==== 2008년 총통 선거에서 당선된 중국 국민당 소속 마잉주 총통은, 중화민국을 다시 1949년까지 대륙을 지배했던 경력이 있는 명목상의 '''중국'''으로 바꾸어 갔다. 중화 인민 공화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중국이 바라는 [[일국양제]]와도 어느 정도 통하는 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중화인민공화국]]과 그나마 관계가 좋은 대만의 세력이 [[중국 국민당]]을 중심으로 한 [[범람연맹]]이다. 이들은 그래도 "중국"이라고는 하니까.] 하지만 실제로는 3無(무통無統, 무독無獨, 무무無武) 정책을 내세우며 현상 유지를 표방 중. 사실 이건 대다수의 대만인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마잉주]] 문서 참고. 이 시기에, 지나친 친중국적 정책을 편 국민당 마잉주 정권은 [[2009년]] 말에 치러진 지방 선거에서 참패했다. 14 : 3에서 12 : 4로 수치 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지만, 득표율에서는 47.88% : 45.32%로 민진당은 [[1986년]] 창당 이래 최고의 득표율을 얻었다. 그럼에도 정책을 크게 수정하지 않고 중국과의 [[ECFA]](The Economic Cooperation Framework Agreement; [[경제협력기본협정]])을 체결함으로서 대외적으로는 "차이완(Chiwan - China + Taiwan) 시대 개막"이라며 주목을 받았지만 대내적으로는 민진당과 국민 다수의 반발을 받고 있다. 참고로, ECFA는 한마디로 중국-대만 [[FTA]]라고 생각하면 된다. 덕분에 [[2010년]] 11월경에 이루어질 5대 시장 선거[* 한국으로 따지면 특별시와 광역시 선거로, 대만 전체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선거다.]에서도 역시 대패를 할지 모른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태권도]]에서 양수쥔 사건을 우려 먹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건 민진당이나 국민당이나 모두 다. 선거 결과는 국민당의 상처 뿐인 승리. 선거 막판에 국민당 중앙 위원이 총에 맞아 다치는 사고로 국민당 표가 집결하면서 다섯 곳 중에 세 곳을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전체 득표에서는 민진당이 49.9%(377만2000여표)를 차지해 국민당의 44.5%(337만9000여표)를 5.4% 포인트 앞섰다. ~~이건 이긴 것도 아니고 진 것도 아니여.~~ 이러한 위기감 속에 펼쳐진 [[2012년]] 총통 선거와 입법 위원 선거에서는 치열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반중국 노선의 민진당의 집권을 원치 않은 중국의 지지와 대만 해협의 대립 상황을 원치 않은 미국의 암묵적 동의가 이루어지면서 국민당이 손쉽게 재집권에 성공하였다(총통 선거에서 과반 이상(51.6%) 득표, 지역구 선거에서 48 : 27의 대승). 하지만 이후엔 마잉주 지지율이 크게 떨어져서 '''10% ~ 20%'''대로 나오고 있고 국민당 지지율도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680|# 그의 지지율이 낮은 이유]] 결국 2016년 [[제14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에서 민진당 소속 후보인 [[차이잉원]]이 당선되면서 대만의 정권은 다시 민진당으로 넘어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