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쥐 (문단 편집) ==== [[흑사병]] ==== '''쥐를 포함한 [[설치류]]는 [[흑사병]]을 일으키는 페스트균의 숙주'''로, 정확히는 털가죽에 기생하는 [[벼룩]]을 여기저기 옮겨주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중국에서 발생하여 [[몽골]]의 정복 전쟁을 전후로 유럽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풍토병으로 존재하는 질병으로, 현재도 해당지역에서 종종 발병한다. 몽골지역의 원주민들은 늘 그렇듯 이 풍토병에 저항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못]]을 사냥해 먹는 풍습이 있어 잊을만하면 페스트에 감염되는 사례가 나온다. 문제는 몽골 제국이 탄생하면서 이 몽골인들이 페스트균을 지닌 벼룩과 함께 대규모로 인구밀집 지역인 정주민 지역을 정복하러 나오면서 재앙이 시작되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몽골인과 달리 페스트균에 대한 저항력이 거의 없었는데[* 아예없진 않았다. 무역로가 연결되어 있으니 주기적으로 전염병은 전달되었다.] 인구는 훨씬 몽골지역보다 밀집되어 있어 페스트균의 감염에 저항하기 어려웠다. 이 당시 페스트균에 대한 저항이 약한 인구가 대부분이던 유럽에서 인구의 무려 30%가 죽고 자연 저항력을 가진 유전자만 살아남았고 결국 남은 유럽인들의 후손은 페스트균에 대한 강한 자연저항력을 가지게 되었다. 도시 전설로서, 유럽의 위생수준이 유독 열악했다는 말이 있는데, 위생개념에 있어서는 중국도 별반 다를바 없었고 몽골은 대량의 가축과 함께 사는 상황상 벼룩과 함께 사는 수준으로 위생상태가 열악했다. 현대사회와 비하면 열악한건 사실이지만, 그건 비교 시점을 현대사회로 잡아서 그런거고 당대의 기술력으로는 어디문명이나 똑같았다. 또 다른 도시 전설로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에 의해 고양이가 마녀의 하수인으로 특정되었고, [[마녀 사냥]]의 광기에 물들어 많은 고양이가 학살되었으므로 억울하게 고양이가 죽었고 불어난 쥐들에 의해 흑사병이 퍼졌다는 낭설이 있는데, 그건 고양이 [[집사]]들의 근거없는 편견으로 흑사병은 '''쥐가 퍼트리는게 아니라 [[벼룩]]이 퍼트린다.''' 그리고 '''[[벼룩]] 항목에서 볼 수 이듯이 [[벼룩]]은 쥐 뿐만이 아니라 고양이에게도 똑같이 잘 기생'''할 수 있으며, 세간의 인식과 다르게 '''[[고양이]]는 도시영역내에서의 [[쥐]] 생태밀도'''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특히나 고양이를 피해서 다닐 수 있는 하수도가 존재한다면 사실상 영향력이 0에 수렴한다.[* 쥐는 라이프사이클이 빠르고 잘 도망다니기 때문에 천적보다는 먹이의 분포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쥐가 페스트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몽골군과 그 [[말]]에게 기생하던 [[벼룩]]이 페스트균을 지닌채 동유럽에 도달했고, 그게 흑해에 항구를 가지고 있던 [[제노바]]의 선원을 거쳐 유럽의 [[쥐]]와 [[고양이]]에게 옮겨붙은 것이다. 다시말해서 의학적 판단에서 보면 당시 고양이를 학살한 판단은 놀랍게도 '''올바른 판단'''이다. 물론 쥐도 열심히 잡았어야했지만 애완고양이라고 '''고양이를 집안에서 끼고 살았다면''' 거의 확실히 쥐를 거쳐 중간숙주인 [[고양이]]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감염되어 죽었을 것이다. 경험적으로 당시 고양이를 기르는 집이 유독 높은 확률로 흑사병이 발병해 가족 전체가 모두 죽는 일이 생겼을 것이고 그러자 교회가 그 현상의 이유를 종교적으로 설명하면서 금기시한 것에 가깝다. 어찌되었던 몽골군이 마침 회군하는 덕에 유럽은 정복당하지 않은 채로 문명이 백신을 맞은 효과를 가지게 되었고, 대규모로 피해를 본 유럽인들은 밀집지역임에도 버틸정도로 강한 페스트 저항력을 갖춘 사람들만 살아남았다. 이후 인구가 회복되었을때 유럽인들은 거의 다 [[페스트]]에 강한 자연저항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후일 [[남미]]로 들어갔을때 인디오에게 의도치않게 페스트를 대규모로 퍼트리게 되었고 인디오들이 급격히 감소하게되면서 정복에 큰 도움을 받았으니 [[새옹지마]]가 떠오르는 사례다. 몽골군이 [[미트 웨건|흑사병에 걸린 시체를 투석기로 유럽의 성벽 너머로 날려 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런 전법은 십자군 전쟁이나 그 이전 유럽에서도 얼마든지 있던 전법이기도 하다. 동쪽에서 갔을때도 [[몽골제국]]으로 정착하게 된 이후 페스트에 대한 저항력이 없던 중국인들에게 페스트가 유행하게 되었고 [[남송]]의 멸망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원]]나라 성립 이후에도 몽골인들은 자연저항력이 어느정도 있다고는 하나 대규모로 발병자가 나오면 페스트균의 밀도나 감염기회가 초원보다 훨씬 높아지기 때문에 몽골인도 큰 인명피해를 보았다. 아랍에서는 14세기 대유행 이후, 제국주의 시대 유럽이 아랍 지역 일부를 지배할 때 페스트가 뒤늦게 크게 발생하여 아랍에서는 유럽 침략자들이야말로 페스트의 발병 원인이라고 여기고 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프랑스군이 이집트를 점령할 때도 페스트가 갑자기 발병하여 많은 프랑스군이 희생되었는데, 당시 이집트인들은 프랑스군을 페스트 군대라고 여기며 피했다고 한다. 스페인의 남미 정복 당시에도 인디오들이 페스트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는데, 그나마 같은 대륙에 있던 인종들과 달리 아메리카인은 [[콜레라]] [[페스트]] [[천연두]] [[나병]] 등 유라시아 대륙 인류를 지독하게 괴롭혀 유라시아인들은 대부분 저항력이 있었던 전염병들에 대해서 저항력이 아예 없었다. 따라서 히스파니올라는 100% 전멸, 그외 지역에서도 평균 96%에 가까운 인구감소율을 보이며 정복당한다. 반대로 [[매독]]이 유라시아 대륙으로 유입돼서 많은 피해를 입히기도 했지만 이건 [[성관계]]만 안하면 피할 수 있는 질병인데다 잠복기가 길어서 당장의 군사적 영향을 주진 못했다. 역사상 사례를 보면 알겠지만 거의 다 정복군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정복군에 붙어온 벼룩이 해당지역의 설치류에 1차 감염되고 이후 2차숙주인 고양이 개등을 거치거나 혹은 직접 인간에게 옮겨붙는 방식으로 페스트가 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쥐가 퍼트린게 아니라 자연저항력이 있는 인간이 벼룩을 달고 다닌채로 쥐에게 퍼트리고 그게 자연저항력이 없는 현지인들에게 옮겨지면서 대재앙이 발생한 것으로 [[페스트]]의 전파에 있어 중간 [[숙주]]로서 쥐의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명백한건 범인은 [[쥐]]가 아니라 [[인간]]이 [[벼룩]]을 이동시킨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