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옥(기독교) (문단 편집) === [[가톨릭]]의 지옥관 === >15. 예수께서는 끝까지 믿고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가게 되는 '''꺼지지 않는 불'''이 타고 있는(마태오 복음서 5,22. 마르코 복음서 9장 43~48) 지옥(게헨나)에 대해 자주 말씀하신다. 그 곳에서는 영혼과 육신이 함께 멸망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천사들을 파견할 것이고 그들은 (중략) 범법을 일삼는 자들을 그의 나라에서 끌어모아 그들을 불가마에 던질 것입니다.(마태오 복음서 13, 41~42)하고 엄숙히 예고하시며,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영원한 불 속으로 가라"(마태 25,41)하고 단죄하실 것이다. >18. 하느님께서는 아무도 지옥에 가도록 예정하시지 않는다.[* 지옥에 가는 사람들에 관해, 칼뱅식 예정론을 견지하는 경우가 많은 개혁주의 개신교와의 차이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자유 의사로 하느님께 반항하고(대죄를 짓고) 끝까지 그것을 고집함으로써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이다. 미사 전례와 신자들의 일상 기도를 통해 교회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2베드 3,9) 바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빈다. >---- >가톨릭 교회 교리서 중. >지옥에서 어떤 고통을 당하는가? >저주받은 이들은 지옥에서 말로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고통을 겪는다. 첫째로, 그들은 결코 하느님을 볼 수 없고 영원히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는다. 둘째로 그들은 불의 고통을 당하고, 영원히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움을 당하며, [[악마]]들의 무리 속에서 살아간다. >---- >독일 가톨릭교회 교리서 중.[* 페터 제발트 저, <가톨릭에 관한 상식사전>에서 인용.] 가톨릭과 정교회에서, 지옥은 죄인들과 불신자들이 사후에 가게 되는 상태이자 장소이다. 그런데, '비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지옥에 가는가?'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일단 논란의 여지가 많긴 하지만 보편교회(가톨릭, 정교회) 모두 '비기독교 신자들이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든 전부 다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다.'라는 견해가 공식 가르침이다. 이는 비신자의 '''죽을 때의 상태'''(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데, 예를 들어 교회나 성당에 다니지 '못하고'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비고의적 비신자들도 상당히 많고, 또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으나 마음으로 알게모르게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일치된 삶을 살지도 모르기 때문. 또 평생 죄인으로 살았던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죽기 전에 혹시 회개했을지 본인과 기독교의 하느님을 제외하면 다른 이들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점 때문에 예를 들어 현대 가톨릭에서는 이전에는 자살자는 무조건 지옥에 가는 죄인이라며 장례미사도 안해주던 관습을 벗고 자살자에 대한 미사나 기도를 해주는 편이다. 가톨릭의 성인인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의 일화 중에도 관련 이야기가 나오는데, 가족 중 한명이 투신자살한 것 때문에 고통받는 여교우에게 (하느님에게 영적인 기적과 은사를 많이 받은)비안네 신부가 "그는 죽기 직전 짧은 시간동안 회개하여 지금 연옥에 있으니 안심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 고 이야기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사실 이론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류의 사람들의 구원 가능성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앙의 삶을 산 교인들과 비교하면 극도로 가능성이 적다고 본다.[* 가톨릭 신학자들의 해설 문헌들을 보면, 교회에 소속된 충실한 교인들의 구원과 죄인/비신자의 구원의 차이는 홍수에서 안전한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과, 물에 빠져 헤엄치고 있는데, 죽을 확률이 높지만 간신히 살아날 '가능성이 없지는 않은' 조난자의 상태와 비슷하다고 한다.] 즉 보편교회 교리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비기독교 신자의 상태는 지옥에 무조건 가게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지옥에 문턱까지 와 있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매우 위험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가톨릭]] 교회의 경우에는 비가톨릭 신자의 구원 '''가능성'''[* 엄청나게 많은 비가톨릭 사람들과 타교파 교인들이 오해하는 것인데, [[가톨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올바른 행실로 신앙생활을 해야 지옥벌을 면하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가르쳤지 가톨릭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사람들도 천국에 확정적으로 갈 수 있다는 식의 만인구원론이나 종교다원주의성 주장은 역사상도 지금도 단 한번도 인정한 적이 전혀 없다. 차라리 [[이단]]설로 배격했으면 배격했지...][* 또한 같은 맥락에서, 가톨릭 서적 등에서 종종 보게되는, "가톨릭 교회는 단 한 사람도 지옥에 떨어졌다고 확정적으로 단언한 적이 없다." 은근히 유명한 말이 있는데, 이런 식의 설교나 해설도 주의해서 알아들어야 한다. 일단 서술 자체는 사실이지만, 이는 '''지옥에 갔거나 가게 되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라는 뜻이 아니라, 구원의 문제는 하느님만의 영역이라서, 인간의 입장에서는 어떤 '''특정 개인'''이 구원받았는지, 지옥에 갔는지, 아니면 연옥에라도 있는지 확실히 장담할 수가 없다는 매우 겸손한 표현이다. 이를 비신자들도 천국에 간다~는 식으로 오해하면 절대 안된다.]에 대해서 조건이 붙는다. 첫째로 '''가톨릭 교회와 복음에 대하여 접해본 적이 없거나 들어본 적이 없거나 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둘째로 비신자 스스로 종교적 진리를 알기 위하여 자기 나름대로(가톨릭의 교리를 모르는 상태에서라도) 영혼 구원의 진리를 탐구하려 열심히 노력하는 자세[* 하단에 서술된 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의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으며 '''양심의 명령'''(어느 문화권에나 보편적으로 있는 도덕률을 따르는 태도)으로 알려진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힘(즉 비신자의 구원 가능성 문제 역시 비신자 스스로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로 이뤄진다는 것을 말한다)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자세를 서술한 것이다. 이런 태도 없이 나는 종교같은거 필요없이 구원받고 싶다는 식으로 나간다면 구원의 가능성조차 받을 수 없다.] 가 필요하다.''' 이 두가지를 하지 않는다면 가톨릭 교회를 알거나 복음을 듣고도 본인의 의심때문에 결국 자유의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태만적인 불신의 죄를 짓게 되기 때문에 구원의 가능성을 긍정할 수가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착한 이교도[* 대부분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 죽어 세례를 받지 못한 선한 사람들, 또는 온갖 위인들처럼 살아 생전 선량하게 살았으면서 [[기독교]]가 뭔지조차 모르고 죽은 사람들.]"나 "(자아가 발달하기 이전의) 유아"들의 경우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분분한 의견이 있다. 이를 지옥의 가장자리인 유아들의 [[고성소|림보]]에 거주한다고 하는 신학 이론이 있어왔으나, 가톨릭의 정식 믿을 교리로 공인된 것은 아니며, 현대 가톨릭에서는 세례받지 않고 죽은 유아들의 구원 가능성을 대단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신학적으로 봐도 크게 무리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지옥에 가게 되는 가장 큰 원인 두가지는그리스도에 대한 '고의적인 불신'과 죄(대죄와 중죄)를 짓는 생활인데, 유아는 아직 충분한 지성과 자유의사가 없으므로 이 두 가지를 모두 짓지 않은 채 죽기 때문이다. --원죄는?-- 가톨릭에서는 사람이 원죄'''만''' 가지고 있을 경우는 원죄만으로 지옥에 가는건 아니라고 본다. 사람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원죄 때문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자유의지로 짓는 중대한 죄([[대죄]]) 때문이다.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역사속 현인들과 선인들의 경우도 이 '유아의 구원 문제'와 얼추 비슷하다.] 물론 가장 확실한 건 죽어서 하느님한테 물어보는 것이지만, 돌아와서 대답을 전할 방법이 없으니... [[가톨릭]]에서는 이교도 문제에 대해 "자기의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를 알지 못하지만, 성실한 마음으로 [[야훼|하느님]]을 찾으며 양심의 명령으로 알려진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힘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기의 탓 없이 하느님을 아직 명백히 인정하지는 못할지라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올바로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섭리가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거절치 않으신다."고 교회헌장에서 밝히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자기의 탓 없이'라는 어구인데 이로 미루어 볼 때 위에서도 주구장창 설명했지만 [[가톨릭]]이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구원의 길을 인정하는 것(종교다원주의)이 절대 아님을 잘 알 수가 있다.] 또 굉장히 중요한 사실은, '''이 교리는 단순히 타종교인이나 무신론자가 착하게만 산다고 구원이 열려있다는 주장이나, 비가톨릭 신자가 가톨릭을 믿을 생각이나 진리 탐구를 하지 않고 제멋대로 살거나 영적으로 게으름을 피워도 된다는 [[면책 특권]] 따위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본의 아니게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하는 비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은총에 따라 양심을 갖고 올바르게 살아간다면 무한히 자비로우신 하느님에 의해 구원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일 뿐이다.(그래서 신자들의 케이스와 달리 구원의 '가능성'이라고 하는 것) 일단 가톨릭의 기본적인 입장은 '구원은 하느님이 주관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이기 때문에 우리가 확실히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의 입장에 따르면 본인과 타인의 구원을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를 믿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선교에 동참하고, 죄인들과 비신자들이 생전에 회개하여 구원의 은총을 받기를 열심히 기도하며, 세상에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펼 수 있게 노력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과 이미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등이 있다.[* 소죄라고 해도, 통념상 어지간히 선하게 살지 않았다면 주일미사에 거의 빠진 적이 없는 신자라도 천국에 직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신자들은 누군가 선종했을 경우, 연옥에 갔을 것이라는 전제를 기본으로 깔고(물론 드러나지 않는 불신이나 죄로 지옥에 갔을 지도 모르지만, 혹여나 하느님의 자비로 회개하여 연옥에라도 가게 되었을지 인간의 입장에서는 알기 힘드므로) 죽은 이의 구원을 위한 기도인 연도를 한다.] * 지옥의 영원성에 대하여 가톨릭 교리에서는 지옥벌은 영원하다고 규정한다. 이는 지옥벌이 영원할 것이라는 성경상 언급에 충실하기 때문이기도 하며, 신학적인 지옥벌의 영원성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하느님은 모든 선의 근원이며 전선함(지극히 선한 속성)과 권위는 무한하기 때문에 이 무한한 권위와 선을 인간이 대죄로서 침범하였을 경우, 그리고 용서받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았을 경우 사후에 치를 그 벌의 강도 역시 지극히 무한하여야 한다. 그런데, 인간 영혼은 하느님처럼 무한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벌의 강도의 무한함을 치를 수가 없다. 따라서 형벌의 기간이라도 무한하여야 한다는 당위성이 생겨나게 된다. 따라서 가톨릭은 오리게네스와 일부 교부들이 주장한 총체적 구원론(만인구원설, 하단참조)이나, 현대의 일부 자유주의 신학자들,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이나 안식교에서 주장하는 지옥 부정설, 대부분의 이슬람 종파들에서 주장하는 것같은 지옥벌의 차별적인 한정이론[* 무슬림은 지옥에 가도 시간이 지나면 천국에 가고, 비무슬림은 영원지옥이라는 사상.], 그리고 바하이에서 주장하는 장소적 지옥 부정 등의 설들을 모두 부정하고, [* 지옥은 장소가 아닌 인간의 영혼 상태 그 자체라고 보는 사상.] 이를 [[이단/기독교|이단]]으로 단죄하여 왔다. >만일 누군가 악마들 또는 불경한 사람들이 받는 형벌이 '''임시적'''이며 '''어느 순간 끝날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단죄될지어다. >----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노드(543년) 문헌 제 9항. * 지옥의 '묘사'에 대하여 지옥의 '묘사'에 대해서는, 가톨릭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과거에는 지옥을 악마들이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을 온갖 이상한 방식으로 고문하고 엄청나게 다양한 방식으로 고통받는 곳으로 보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유럽의 오래된 [[성당]]의 벽화들을 보면 이런 관점의 성화들과 벽화들이 수두룩하다. 당시 나름 생각할 수 있는 고통스러운 이미지들을 죄다 콜라보레이션해서 넣었기 때문에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지옥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가톨릭]]의 교리문답서에 의하면, 지옥의 실제적 존재와 엄청난 고통을 인정하지만 지옥의 [[고통]]에 관해서는 "[[야훼|하느님]]과의 영원한 결별" + 지옥에서의 '''형언하기 힘든 실제적 고통'''이 지옥 형벌의 핵심으로, 지옥 '묘사'의 세부적인 사항에 관해서는 "구체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통적 성화들의 지옥 형벌 묘사에 대하여)어떤 그림에는 끓는 무쇳물을 퍼먹이기도 하고, [[구렁이]]가 휘감고 있기도 하는데 이것은 지옥벌이 (그만큼) 무섭다는 것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 > 가톨릭 교리해설서 <상해천주교요리>(서울대교구 윤형중 마태오 신부, 1956년 저), 상권, 310p. > "성서에 표현된 지옥 묘사의 '구더기'를 본래 의미로 알아듣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불은 거의 모든 이가 본래 의미로 알아들으며, 이것을 명백한 어조로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 >가톨릭 신학자 프리드리히 엠마누엘 폰 후르터(1787~1865) 그런데, 지옥에서의 세부적 묘사 중, 지옥의 꺼지지 않는, 죄인들에게 고통을 주는 영원한 '불'(Ignis)에 대하여는 가톨릭 교회는 비유나 상징으로 보지 않는다. [[예수회]] 출신의 근세 가톨릭의 권위적 신학자인 프란치스코 수아레즈는 [[악마]]와 악한 영혼들을 벌하기 위하여 준비된 (지옥)불은 비유가 아닌 진정한 불이고 '본래 의미의 불'[* 정확히 설명하면, '본래 의미의 지옥불'이라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우리가 직접 현실에서 마주하는 그런 성질의 불은 아니고, 고통의 상징 또한 아니며, 악마, 악한 영혼과 구별되면서 실제적 고통을 주는, 신비스러운 불이라고 규정했다.]이라는 것은 '''명백한 가톨릭적 견해'''라고 규정하였고, 교황청 교도권의 공식 견해 또한 이 입장을 수용하였다. 교황청 내사원[* 교황청의 상급 사면기관으로서, 일반 사제나 주교의 권한으로 사면이 불가능한 심각한 대죄(예를 들어 성체모독에 대한 사면 등)와 관련된 사안을 검토하는 기관이다. 교회법에 명시된 사면 유보의 중죄(교황에 대한 폭행이나 성체모독사건 등)사건이 교황청으로 올라오면 해당 죄인의 상태를 심사, 사면 여부를 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에서는 "지옥의 불이 실제적 불이 아니라 그저 상징이나 비유라고 보는 신자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청원에 일단 제대로 된 교리를 알려주고, 그럼에도 고집스럽게 지옥불이 상징이라고 주장한다면 경고의 의미로 죄의 사면을 거절하라는 지침을 내린 바 있다.(1890년 4월 30일 발표) 따라서 비록 '지옥의 불이 실제적 불이라는 교리'는 [[사도신경]], 성모무염시태 교리나 [[공의회]] 결정 사안처럼 결정적인 무오류성을 띤 것은 아니지만, 신자들이 따라야 할 지옥 교리에 대한 교황청 공식 가르침이다. >교회는 지옥의 존재와 그 영원함을 가르친다. 죽을 죄([[대죄]])의 상태에서 죽는 영혼은 죽은 다음 곧바로 지옥으로 내려가며, 그곳에서 지옥의 고통, 곧 영원한 불의 고통을 겪는다. >----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5항.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31015&cid=50766&categoryId=50794|종교학대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가톨릭]]에서는 지옥의 고통을 정신적인 고통인 '상실의 형벌'(이를 '실고'라고 일컫는다)과 물질적인 고통인 '감각의 형벌'(이를 '각고'라고 한다)이라는 두 고통으로 정의해 왔다. 지옥에 있는 저주받은 죄인들은 하느님을 바라보며 함께 있는 행복과 그 안에서 편안함을 발견하는 영혼의 능력도 상실하게 되며, 그와 동시에 모든 초자연적인 혜택(은총)도 받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극도의 공허'''가 지옥에 떨어진 자들에게 엄습하며, 공허감은 헤아릴 수 없는 고민을 불러 일으킨다고 한다. 즉 쉽게말해 지옥에 떨어진 영혼은 끝없는 스스로의 양심의 가책, 그리고 정신적인 고통속에 몸부림치게 된다고 한다. 2007년에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오늘날 신자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은 죄를 용서받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지 않으면 영원히 지옥불에 떨어질 것을 잊고 산다"라고 발언했을 때, [[바티칸]] 보도국에서 곧바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교황이 사람들의 이해가 빠르도록 교구 사제처럼 말한 것이며,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아니다"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던 적이 있는데, 사실 교황의 이 발언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라고 봐도 교리에 어긋난 것은 아니다. 위의 지옥불의 존재는 확실하다는 교황청의 신학지침도 있는데다, 어디까지나 지옥의 실제와 지옥에서의 고통이([[성경]]에 묘사된 것이 상징적이든 실제적이든 간에)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는 것, 그리고 대죄를 지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는 기본 교리는 [[가톨릭]]에서도 단 한번도 부인한 적이 없기 때문. 또 [[파티마의 성모]] 발현이나 파우스티나 성녀의 예수님 자비의 환시등 현대 가톨릭 교회에서 인준된 [[성모 발현]] 및 기적 사례에서도 마귀들과 악인들, 불의 고통이 가득한 불지옥의 환시가 상세히 보여지고 가톨릭 교회의 믿을 만하다는 인정을 받은 적이 있으며, 아직도 가톨릭 신자들 중엔 기존의 지옥 가치관을 고수하는 신자들이 상당히 많다. 결론적으로 [[베네딕토 16세]]의 지옥불 언급도 교리에 어긋나거나 잘못된 말이 아니라는 것. 현대 가톨릭에서 말하는 지옥이란 결론적으로 말해 "[[야훼|하느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상태+따라서 신의 보호가 완전히 사라짐으로 인해 형언하기 힘든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절망적인 영원함 속에 방치되는 상태(이자 영적 공간)"이다. 하느님이란 완전하고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존재이며, 지옥이란 인간이 스스로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에 그에 대한 형벌로 죄에 생전의 대한 값을 치르며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미치지 않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또한, 특정한 인간이 [[천국]]과 [[연옥]], [[지옥]] 중 어디로 가게 될지의 기준은 신학적으로 명확하나(소죄만 짔거나 용서받은 대죄인은 연옥행, 대죄를 용서받지 못하면 지옥행) 그 개인이 용서받았을지 여부는 하느님의 영역이기에 인간은 함부로 판단할 수 없으며(때문에 가톨릭 교회에서는 천국으로 가는 가장 확실하다고 판단된 길을 지켜야 할 교리로 제시해주는 것) 인간은 그저 겸손히 [[예수]]를 통해 복음을 선포하고 죄와 투쟁하며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부단히 노력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하느님이 자비롭고 인간을 사랑해도 지옥으로 가는 사람이 많이 존재하는 것이다. 최후의 최후까지 하느님이 싫어서 거부하고 도망간 자들이기 때문. 하느님이 싫어서 그의 자비를 끝까지 거부한 이들에겐 거기에 걸맞는 곳을 준다는 것. 물론 죄인들이 지옥을 좋아서 간다는 뜻은 아니다. 천국에 가자니 하느님이 싫겠지만 그렇다고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선택권이 없을 뿐.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의 짧지 않은 시기의 기회를 끝까지 거부한 이들에겐 자비없는 심판이 기다린다. 다만 지옥의 선고가 하느님에게서 직접 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라칭거 추기경이었던 때 지은 'Eschatologie(1977)'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파멸을 선고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어디까지나 구원자이기 때문이다. 파멸은 그리스도께서 선언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에게서 멀리 벗어나서 혼자만의 세계에 파묻히고자 하는 인간에게서 온다. 구원의 제공자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길 잃은 인간이 자신과 그리스도 사이에 차단벽을 세우고, 스스로 구원으로부터 분리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라고 서술하였다.[*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발타사르의 구원 이야기』, 바오로딸, 2018에서 재인용]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