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잡대 (문단 편집) === 대학 자체의 역량 부족 === 현재 [[대한민국]]의 상당수의 대학들은 국가의 경제력에 비해 연구 능력이나 시설 수준 등이 크게 뒤떨어진다는 평을 받고 있다. 연구비나 논문 등재 수 등 객관적으로 표현 가능한 지표들에서 한국과 비슷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에 비해 많이 부족한 편이다. 이는 극소수의 대학을 제외하고는 인서울이나 지방대나 마찬가지다. 연구 수준은 물론 교육 수준도 비슷하여 때로는 한 강의실에 수십 명씩 수업을 받는, 고등학교만도 못한 강의실이 오늘날 한국 대학의 현실이다. 특히 지방의 사립대학(4년제, 전문대 포함)들은 '''[[창렬|대부분 등록금만큼은 결코 서울의 명문대학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 비싸다.]]''' 사실상 돈만주면 학위를 주는 '''학위 장사'''로 총체적으로 도저히 경쟁력이 없다. 그러다 보니 대학을 선택함에 있어서 그 대학의 학문적 성과라든가 커리큘럼, 강의실 및 연구 시설 혹은 편의 시설의 수준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속되게 말해 '''대학시설은 어디나 다 별 볼일 없으니''' 중고등학교 마냥 집이랑 가깝거나 교통이 편리하다든가, 주요 문화시설 및 번화가에서 가깝다든가 등 교육 외적인 요인이 수험생들의 대학 선택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된 것이다. 또한 대학의 교육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하향지원 등으로 자신의 성적대보다 낮은 대학을 들어왔거나 아니면 그 수준에서도 더 능력있는 학생은 [[반수(입시)|반수]]나 [[편입학]]으로 나가고 남은 인풋이 그대로 아웃풋, 즉 대학 입학 성적이 졸업생들의 능력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학교가 아예 답이 없는 수준이면 그러려니 해도, 상위 10%~30% 이상의 역량이 상당히 되는 대학들, 심지어 '''명문대를 위시하는 대학들조차도''' 학생들의 능력을 끌어올릴 커리큘럼이 부족한 실정이다. 실제로 제대로 교육하려고 하는 대학은 몇안된다. 우리나라 대학교 플랜카드만 봐도 취업이 우선이다. 더욱 연구하려고 대학가는 게 아니면 뭐가 대학의 독특함을 유지해줄까? 이렇게 각 대학마다 장점은 없고 취업타령을 하니 대학교를 서열화하려는 것이다. 취업이 가장 먼저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연구를 위한 학생 가르침도 적다. 그래서 대학원생 이하 대학교 학생들의 경우 아는 것이 없다. 이에 비해 독일의 대학교 학생들은 수학과 학생에게 수학자라고 교수들과 일반사람들이 언급하며 인정해준다. 우리와 매우 대조되는 상황이다. 한국의 경우 수학과라도 수학자라고 부르지 않고 무시하는 형편이다. 그만큼 한국 대학교 교육의 질이 매우 낮다는 소리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대학은 원래 높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던 학생들을 최대한 유치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었고, 이 때문에 입결의 중요성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낮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높아졌다. 현재는 일부 최상위권 대학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재학생들은 자신의 학교를 소속감과 애정을 가져야 할 대상이 아닌 인생에서 잠시 거쳐가는 곳 정도로만 여기고 있다. 이런 생각에는 "'''어차피 대학에 무언가를 기대하기는 틀렸다'''", "'''이류대에 입학했으니 이류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라는 자조적인 인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중상위권 대학에 입학한 이들은 지잡대와는 달리 명문대를 목표로 공부했던 사람들이고, 이미 좋은 직장을 잡을 수 있는 학력 및 입시 외적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더 큰일을 못 하는 걸 아쉬워하는 사람들이라 상황이 좀 다르긴 하다.] 이 2가지 결과가 합쳐져서, 사회가 대학을 보는 시선에 한국사회의 병폐 중 하나인 서열주의식 편견이 생기게 되었다. 지금보다 더 대학 시설이 열악했던 과거에는 오히려 지방대 홀대 현상이 적었다. 물론 흔히 말하는 지잡대는 그 때도 다를 거 없었지만 최소한 4년제 [[국립대학]]들과 지역 명문 [[사립대학]]들은 꽤 상당한 대우를 받았다. 특히 지방에서 공부 좀 한다는 분들이 가정 상황이 여의치 않아 등록금이 싼 인근 국립대학을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지방에서 서울로 자녀를 유학 보내는 일은 자녀가 1~2명에 불과한 오늘날에도 힘든 일이다. 하물며 70~80년대에는 자녀의 수가 적게는 3명 많게는 5명 정도가 일반적이었다. 장남의 대학 진학을 위해 동생들이 진학을 포기하는 집도 많았던(특히 딸들) 시기에 자녀 여럿을 서울로 유학시킬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이 그리 많지 않았고, 또 여유가 있는 집이라도 보수적인 인식에다가 같은 문란함이라 해도 여자가 훨씬 리스크가 큰 문제 등으로 인해 여학생을 서울로 보내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많았다.[* 정 [[서울]]로 보내더라도 [[남녀공학]]이 아닌 [[여자대학]]에 보냈고, 엉뚱한 생각 못 하게 [[기숙사]]에 집어넣었다. 이런 여학생들은 대학생활 4년 내내 기숙사-강의실 오가며 공부만 하다가 졸업한 뒤 자기 지역의 회사에 들어가거나 연구소에 취업하거나 [[교사]]가 되거나 했다.] 이런 경우 우수한 인재들이 집에서 가까운 지방 국립대, 또는 명성이 자자한 지방 사립대를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