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중해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external/www.turkiye-rehberi.net/piri_reis_dunya_haritasi_m.jpg|width=600]]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대제독이었던 [[피리 레이스]](Piri Reis)의 <해양의 서 (Kitab-ı bahriye)>에 수록된 지중해 지도의 모습. 주변 지역이 죄다 비옥한 지역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세 대륙이 맞닿는 지점이라 고대로부터 [[페니키아]]인, [[그리스]]인들이 활동하는 무역과 물산의 중심지였으며 많은 국가가 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였다. 본격적으로 이 지역을 완전 장악한 국가는 [[고대 로마]]였으며, 이후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등장에 따라 이 지역은 양 진영 간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싸움이 이어졌다. [[동로마 제국|로마 제국]], [[우마이야 왕조]], [[아글라브 왕조]], [[아말피 공화국]], [[피사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 [[베네치아 공화국]], [[시칠리아 왕국]], [[파티마 왕조]] 등이 중세 지중해를 주름잡고 그 지역의 패권 국가로 군림해 왔으며,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대서양 무역이 시작한 이후에도 서양 세계의 문화적, 정치적 중심지는 스페인과 오스만 제국이라는 근세 유럽의 양대 거인이 엉덩이를 깔고 있었던 지중해권이었다. 한때 [[오스만 제국]]이 해적 출신의 제독 [[바르바로스 하이레딘 파샤]]의 활약에 힘입어 [[프레베자 해전]]에서 기독교 함대를 격파하며 로마 제국 이후 다시 지중해의 패권을 잡을 뻔 했으나 [[레판토 해전]] 이후로 동지중해의 이익을 차지하는 데 만족해야 했고, 서지중해의 패권은 막강한 스페인과 제노바, 토스카나 등 이탈리아계 제후국들이 나눠 먹어 16세기~17세기에 걸쳐 마치 현대의 [[냉전]]을 방불케 하는 메시나 해협을 경계로 하는 지중해의 양분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막상 이런 식으로 지중해가 잠잠해지고 나니 이후 무역의 중심이 [[북해]]와 대서양으로 옮겨감에 따라 과거와 같은 중요성이 부각되진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전략적인 측면에서 이 지역은 다시 중요한 거점으로 부각되는데, 우선 [[러시아 제국]]은 오스만 제국을 몰아내고 지중해의 [[부동항]]을 얻어 해상활동을 자유롭게 하기를 원했으며 [[영국]]은 [[이집트]]를 점령한 뒤 [[수에즈 운하]]를 매입하여 인도로 통하는 [[대영제국]]의 생명줄로 삼았다. 또한 독일 역시 [[이스탄불]][*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다.]을 통한 진출을 꾀하기도 했고 북아프리카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등에 이권을 취하고 있던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다른 서구 열강들도 중요시 여기는 곳이었기 때문에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다.[* 물론 당시 강력한 해군력을 지닌 영국이 [[지브롤터]], [[몰타]], [[크레타]] 등에 거점을 두고 사실상 자기 앞마당처럼 만들기는 했지만.] 이 때문에 [[20세기]] [[냉전]] 종식 이후에도 이 지역은 갈등의 불씨가 남아있는 경우가 좀 있다. [[발칸 반도]]의 [[코소보]] 문제라든지,[* 엄밀하게 보면 코소보는 내륙지역이지만 발칸 반도 자체가 지중해에 접해 있고, 코소보 역시 지중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도 그렇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