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직봉풍전쟁 (문단 편집) === 펑위샹과 궈쑹링의 동맹 === 봉천군벌 육대파의 수장 [[궈쑹링]]은 일본 방문 중 [[도쿄]] [[제국호텔]]에서 펑위샹의 부하 [[한푸쥐]]를 만나게 되었다. 궈쑹링은 장쭤린을 매국노로 비난하면서 자신이 장쭤린을 몰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귀뜸하였다. 한편 [[손봉전쟁]] 중 펑위샹이 쑨촨팡과 결탁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장쭤린은 펑위샹과 쑨촨팡의 결탁을 막기 위해 11월, 베이징으로 병력을 파견해서 펑위샹을 압박하는 한편 허란주 등을 파견하여 펑위샹과 교섭하게 하였다. 이에 펑위샹은 베이징에 주둔하고 있던 녹종린, 정금세 부대의 일부만 베이징에 잔류시키고 나머지는 남구로 철수시켰다. 또한 장지강과 [[쑹저위안]]에게 찰동의 방어를 증강하게 하였다. 하지만 펑위샹은 [[우페이푸]]와도 적대관계라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일단은 장쭤린과의 화평교섭에 나섰다. 허나 장쭤린은 펑위샹의 통수를 날리기 위해서 [[리징린]]과 [[궈쑹링]]에게 국민군을 공격하라는 밀령을 내렸으나 리징린과 궈쑹린 모두 보경안민을 구실로 이를 거부하였다. 11월 7일, 펑위샹은 일본에서 갓 귀국한 한푸쥐에게 톈진에서 궈쑹링과 만날 것을 지시하고 곧이어 궈쑹링의 육군대학 동창인 참모장 웅빈을 파견하여 비밀회담을 하게 했다. 궈쑹링의 반봉의사가 진짜인지 알아보려 했다. 11월 12일, [[장쉐량]]이 톈진으로 내려와 국민군을 공격하라는 장쭤린의 지시를 전달하고 군사회의를 소집하였다. 궈쑹링과 리징린은 장쉐량을 설득하여 펑위샹과 화평교섭을 할 것을 청했고 11월 15일, 장쉐량이 응함에 따라 봉천측이 보대지구를 펑위샹 측에 양보하는 것으로 양측의 군사적 대치는 일단락되었다. 허나 11월 17일, 국민군 2군이 바오딩을 접수하기 위해 서둘러 진입하다가 잔류한 봉천군과 교전을 벌였고 이로 인하여 11월 15일의 합의는 무효로 돌아갔다. 궈쑹링은 펑위샹과의 전쟁은 [[양위팅]]의 선동이며 명분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장쭤린은 듣지 않고 리징린에게 보대를 즉시 탈환할 것을 지시하고 궈쑹링에게는 부대를 란주(灤州)에 집중시키고 봉천으로 돌아오라고 지시했다. 병원에 드러누워 있던 궈쑹링은 11월 19일, 그의 고문 이견백과 동생 곽대명(郭大鳴)을 포두에 파견하여 펑위샹과 긴급상의하게 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점에 대해 합의했다. * 1. 군벌전횡을 배제하고 영원히 전화를 소멸시킨다. * 2. 민주정치를 실행하고 노공의 생활 및 대우를 개선시킨다. * 3. 교육의 보급을 실행한다. * 4. 변경을 개발하고 국토를 보존한다. * 4.1 직예, 열하는 모두 리징린에 귀속한다. 펑위샹은 화평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열하를 절대 취하지 않는다. 보대 경한선은 펑위샹군이 뜻에 따라 주찰(駐札)하며, 단 직예성의 모든 수입은 리징린의 군에 귀속하고 펑위샹군은 절대 침탈하지 않는다. 산동은 자연변화를 듣지만, 황하 이북 각현은 리징린군이 주찰하며, 수입은 역시 산동에 귀속한다. 천진해구는 펑위샹군이 자유로이 출입한다. * 4.2 궈쑹링은 동삼성 개발을 위하여 동북부 내몽골을 경영하며, 국민생활을 유쾌하게 하고, 은환(隠患)을 없애고, 중앙을 옹호하며, 국가통일을 촉진하기 위해서 동삼성 정부를 개조한다. 전항 개조사업에 펑위샹은 성의로써 돕고 아울러 반대방면을 견제한다. * 4.3 궈쑹링은 펑위샹이 서북을 개발하는 데 성의로 도우며, 필요시 실력으로 원조한다. * 5. 이후 양군은 아래의 조건 가운데 하나라도 범하면, 이 협약은 무효로 된다. * 5.1 양탈권리를 위하여 내지 각성에서 전쟁을 하는 것. * 5.2 전항 전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매국적 조약을 체결하고 외국에서 차관을 들일 때. * 5.3 외국 병력을 끌어들여 본국 동포를 잔살(殘殺)할 때. * 6. 중앙정부의 조직 및 시정방침은 서북개발을 방해하지 않고 국가권리를 상실하는 것을 한계로 삼고, 모두 국민 공의에 따라, 펑위샹과 궈쑹린 양군은 힘껏 옹호하며 결코 간섭이나 방해하지 않는다. * 7. 이 약정은 날인 후 즉시 발효한다. 11월 20일, 펑위샹이 합의서에 서명하고 22일, 궈쑹링이 서명하면서 정식으로 동맹이 체결되었다. 궈쑹링은 22일에 즉각 [[반봉사건]]을 일으켜 장쭤린에 대항하는 봉기를 일으켰지만 펑위샹 산하의 2군과 3군은 펑위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과거 리징린과의 원한을 잊지 못하고 리징린을 공격하면서 삼각동맹은 붕괴되었고 궈쑹링이 관동군의 개입으로 패배하면서 총살될 때 아무것도 못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궈쑹링과 펑위샹의 동맹이 폭로되면서 펑위샹은 신의 없는 놈으로 전국 각지에서 욕을 먹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