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직접민주주의 (문단 편집) == 고대의 직접민주주의 == >우리의 정치체제는 이웃나라의 관행과 전혀 다릅니다. 남의 것을 본뜬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남들이 우리의 체제를 본뜹니다. 몇몇 사람이 통치의 책임을 맡는 게 아니라 모두 골고루 나누어 맡으므로, 이를 데모크라티아(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개인끼리 다툼이 있으면 모두에게 평등한 법으로 해결하며, 출신을 따지지 않고 오직 능력에 따라 공직자를 선출합니다. 이 나라에 뭔가 기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가난하다고 해서 인생을 헛되이 살고 끝나는 일이 없습니다. 실로 우리는 전 헬라스의 모범입니다. >---- >[[기원전 431년]] [[페리클레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전몰자 추도 연설]] 중에서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의 민회 등 고대 사회에서 민주주의 정치는 대부분 직접 민주주의에 가까운 정치 행태였다. 그러나 시민권 자체가 제한되어 있기도 했고[* 고대 아테네를 현대 민주주의에 비기기에는 유권자의 비율이 낮은 편이었다. 기원전 4세기 아테네의 인구는 10만 명 이상이었으나 시민 계층은 2만 명에 불과했으며, 그나마도 하층 시민들은 먹고 사는 데 바쁘거나 정치에 무관심했다. 그리고 시민 이외의 계층은 절대 다수가 노예였고, 직접 민주주의 체제가 다수 노예의 생산으로 지탱되었다는 점을 보면 차라리 근대의 부르주아적인 간접 민주 정치와 흡사하다. 그렇지만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해군 노잡이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한 [[프롤레타리아|무산자]]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이를 위한 정치 참여시 보수 제공 등의 제도 마련이었음을 고려한다면 마냥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따른다.], 규모도 작았다. 결국 한계를 보여 그리스고 로마고 다른 정치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그리스에 비하면 로마는 상당히 대의제에 가깝다.] 그래서 사실 그리스나 로마나 완벽한 의미의 직접민주제를 실시한 것은 아니다. 고대 직접민주주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공직 [[추첨제]]: 아테네에서 실행되었던 것으로 모든 시민은 공직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상 아래, 추첨을 통해서 아무나 공직에 앉히는 것이다. 당연히 이렇게 하면 자질이 없는 인간이 공직에 앉을 수 있다는 문제가 있으며, 시민들도 언제 공직에 추첨될 지 모르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공부를 해야했다. 그러나 생계 때문에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민은 많지 않았다. * 민회: 주민들이 모여서 정기적으로 집회를 가진다. 흔히 민회라고 불리는 이 집회에서 누구나 제약 없이 법률을 제안하고 통과시킬 수 있다. 그러나 민회 제도는 인구 증가를 따라갈 수 없고, 정치 참여의 확대가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 생계나 거주지가 너무 멀다는 이유 때문에 민회에 출석할 수 없는 사람도 많이 있어서 스위스 같은 작은 나라가 아니면 필연적으로 유산 계급 만이 참가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