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희성) (문단 편집) === 통일 이후[* 서기전 677년 ~ 서기전 349년. 20대 328년. 삼진이 제후로 인정받은 서기전 403년까지로 치면 18대 274년. 출공이 죽은 452년으로 치면 225년.] === * [[진무공|무공 칭]](武公 稱) - 위와 동일 * [[진헌공|헌공 궤제]](獻公 詭諸) - 서기전 676년 ~ 서기전 651년, 무공의 아들 * [[희해제|해제]](奚薺)[* 해제, 도자 모두 시호가 없다.] - 서기전 651, 헌공과 여희의 아들. 이극에게 암살 * [[희탁자|도자]](悼子) - 위와 동일, 헌공과 여희의 동생의 아들. 이극에게 암살 * [[진혜공|혜공 이오]](恵公 夷吾) - 서기전 650년 ~ 서기전 637년, 헌공의 아들이자 문공의 이복형제. 혜공의 어머니와 문공의 어머니는 자매이다. * [[진회공|회공 어]](懷公 圉) - 서기전 637년, 혜공의 아들[* 회공의 이름 어는 마굿간지기라는 뜻인데 원래 혜공이 망명 시절에 양나라에서 회공을 낳았다. 이때 그의 장인인 양나라 군주가 외손자가 남의 신하가 될 상이라고 하여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 '''[[진문공|문공 중이]]'''(文公 重耳) - 서기전 636년 ~ 서기전 628년, 헌공의 아들로 혜공의 이복 형이자 회공의 백부, '''[[춘추오패]] 중 한 명'''이자 진을 사실상 춘추시대 패자로 올려놓은 인물이다. * [[진양공|양공 환]](襄公 歡) - 서기전 627년 ~ 서기전 621년, 문공의 아들. 진 헌공 때 이미 태어나 있었다. 진 문공이 망명을 할 때 그의 재산을 빼돌려 달아났던 두수가 아버지를 잃은 진 양공과 그의 여동생 백희를 키웠다는 것이 후에 밝혀졌다. * [[진영공|영공 이고]](靈公 夷皋) - 서기전 620년 ~ 서기전 607년, 양공의 아들, 10살도 안 되는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아무것도 모르다가 20살이 넘자 포악한 정치를 했다. 이때문에 재상 조돈의 사촌 동생 조천에게 살해당했다[* 사실 조돈은 이것을 걱정하여 진 양공의 동생인 공자 옹을 군주로 세우려 했으나 진 양공의 부인 목영의 1인 시위로 인하여 민심이 진 영공에게 몰려 어쩔 수 없이 그를 후로 추대했다.]. * [[진성공|성공 흑둔]] (成公 黑臀) - 서기전 606년 ~ 서기전 600년, 문공의 아들. * [[진경공|경공 거]](景公 據) - 서기전 599년 ~ 서기전 581년, 성공의 아들. --변소에 빠져 죽었다-- [* 고사성어 [[병입고황]]의 유래이다.] * [[진여공|여공 수만]](厲公 壽曼) - 서기전 580년 ~ 서기전 573년, 경공의 아들, 난서와 중항언에게 피살. * [[진도공|도공 주]](悼公 周) - 서기전 572년 ~ 서기전 558년, 양공의 손자[* 정확히는 양공의 아들인 혜백 담의 아들]로 여공의 당숙, 여전히 강국이었으나 이때부터 군주보다 6경의 세력이 강해짐. 그래도 진 도공은 총명하였기 때문에 나름 군주로써의 세력을 휘두름. * [[진평공|평공 표]](平公 彪) - 서기전 557년 ~ 서기전 532년, 도공의 아들, 초기에는 정치를 잘했으나, 점점 유흥에 빠져 누각과 연못을 만드는 때 예산을 낭비했다. 귀신을 부르는 짓까지 하다가 귀신이 보인다며 앓다가 죽음. * [[진소공|소공 이]](昭公 夷) - 서기전 531년 ~ 서기전 526년, 평공의 아들. 실질적으로 실권을 가진 마지막 군주. * [[진경공(33대)|경공 기질]](頃公 棄疾) - 서기전 525년 ~ 서기전 512년, 소공의 아들. 진 평공이 죽을 때 나이가 40살 정도로 추정되는데 그 아들 진 소공이 재위 6년 만에 죽었으므로 진 경공의 재위 당시 나이는 10살 미만으로 추정. 실제로 이 군주 때부터 진나라 군주의 실권이 완전히 소멸되었다. * [[진정공|정공 오]](定公 午) - 서기전 511년 ~ 서기전 475년, 경공의 아들, 서기전 497년이 되자 지씨의 가주인 지백 요의 주도로 [[한나라]](韓), [[위나라]](魏), [[조나라]](趙)의 가주들과 함께 범씨와 중항(순)씨의 영토를 분할해 차지해 버리고 6경 중에 네 가문이 남음 * '''[[진출공|출공 착]]'''(出公 鑿) - 서기전 474년 ~ 서기전 452년, 정공의 아들, 서기전 457년 지백 요는 한(韓), 위(魏), 조(趙)의 가주에게 영토를 나누어 달라는 제의를 했는데 조의 가주였던 조양자가 거절함. 결국 지백은 그를 치기 위해 한의 가주 한강자(한호), 위의 가주 위환자(위구)와 함께 조양자(조무휼)를 쳤으나, 한과 위의 배반으로 사로잡혀 죽음을 당함, 이렇게 6경은 조, 위, 한 세 가문만 남고 지백의 영토를 삼분화함, 출공은 이들 세 가문을 몰아내기 위해 [[노나라]] 권신들이었던 [[삼환]] 가문의 가주들과 [[제나라]] 권신 전씨 가주에게 밀서를 보냈지만 오히려 그것을 삼가에게 알리는 바람에 쫒겨남. [* 애초에 제나라의 규성 전씨는 강성 여씨의 제나라를 찬탈하려고 했기에 명분을 위해서 삼가에게 말한 것 같다. 전씨는 후에 결국 찬탈한다.][* 살해당했다는 말도 있다.] 생각해보면 군주(공)를 위협하는 유력 가문들을 잡기 위해 다른 나라의 군주를 위협하는 유력 가문들을 끌어들인 자체가 어불성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